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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넋이 나가는 도시, 인도 바라나시
▲ 최재훈 여행작가

“우리 모두가 명치를 맞은 듯이 충격을 받은 건 단연코 지구가 솟아오르는 광경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을, 우리가 진화한 곳을 되돌아본 것이었다. 거칠고 우툴두툴하고 낡아빠진 데다 따분하기까지 한 달 표면에 비하면 우리 지구는 참으로 알록달록하고 예쁘고 섬세했다. 아마도 거기 있었던 우리 모두는 달을 보려고 386,242.56킬로미터나 왔는데, 정작 절대 놓쳐선 안 될 장관이 지구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줄리언 반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중에서)

달에서 지구를 본 한 우주인은 저렇게 자신의 먼 여행을 되돌아봤다. 보통의 여행도 비슷한 정서가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인 38만킬로미터에는 훨씬 못 미치겠지만, 일상에서 수천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나오다 보면 내가 살던 곳, 지내던 동네, 거기에서의 하루하루가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하찮게, 때로는 더 빛나게. 어느 쪽이든 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어지는 이라면 인도 북부의 여행자 도시인 바라나시에 가 보기를 권한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경적소리와 먼지, 더위와 인파가 버무려져 만들어 내는 혼돈의 구덩이 속에 여행자를 내동댕이치는 곳, 인도. 숨 고를 틈도 없이 아주 거칠게. 바로 이 점이 자타공인 인도 여행의 매력이다. 일상 탈출을 외치며 배낭 메고 집 떠난 여행자들에게 “너 잘 왔다!” 하며 일상 밖의 지옥을 맛보게 해 주니, 떠나온 일상이 얼마나 소중해지겠는가. 그런데 바라나시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뭄바이나 델리에서 출발해 거친 인도 여행을 시작한 여행자들은 무릇 바라나시에 와서 안식을 얻는다. 바라나시에는 뭐가 있길래? 위치로 보자면 바라나시는 인도 동북부에 있는 네팔과 가까운 도시로 힌두교도들에게는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배낭 여행자들 중에는 국경을 넘어 카트만두나 포카라로 가는 이들도 제법 있다. 여행자 입장에서 바라나시를 세 단어로 표현하면 ‘골목’과 ‘가트’와 ‘화장터’다. 우선은 골목. 미로보다 더 복잡한 이 도시의 골목에서 길을 잃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골목 자체도 복잡하려니와 골목 바닥을 채운 갓 생산된 신선한 소똥과 골목 한가운데 떡하니 버텨 앉은 소님의 흔들리는 꼬리까지 피해 다녀야 하니까. 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물컹한 소똥을 보면서도 한 끼 식사를 거뜬히 해치울 수 있을 정도의 비위가 생긴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의 생존 적응력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두 번째 단어 가트는 강변에 만들어진 계단을 말한다. 바라나시를 찾는 수백만명의 순례자들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 갠지스강물에 몸을 씻고, 업을 씻을 수 있도록 만든 종교적 계단이라고 하면 맞으려나?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고, 바로 위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도 아랑곳없이 업을 씻어 내려는 순례자들의 목욕은 진지하다. 도시를 따라 길게 놓인 이 계단 어느 곳에든 앉아서 희뿌연 갠지스강의 일몰을 보다 보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른다는 구운몽 한 편 쓰는 건 일도 아니다. 갠지스강과 가트 조합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그만큼 몽롱하다.

골목을 빠져나와 강을 따라 만들어진 계단인 가트를 따라 걷다 보면 바라나시의 또 다른 단어인 화장터와 마주하게 된다. 화장터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늘 보던 단정한 건물에 칸칸이 마련된 화장 시설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강 옆 둔덕에 말 그대로 터만 잡혀 있는 곳이다. 화장터 위쪽에는 죽은 자들을 태울 장작들이 가득 쌓여 있고, 저울에 무게를 달아 장작을 파는 이와 팔린 장작을 화장터로 나르는 인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그 주변을 빙 둘러 화장터를 보러 온 여행자들이 자리를 잡고 앉거나 서 있다. 힌두교도들은 삶을 마감하고 업을 끊기 위해 화장터를 찾지만, 여행자들 대부분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이곳을 찾는다.

사람의 몸을 태우는 장면을 보는 일이 어디 쉬운가? 화려한 빛깔의 고운 천에 쌓인 몸이 장작더미 위에 올려지면, 가족 중 한 명이 불을 붙인다. 불은 이내 천을 휘감아 돌며 검은 연기를 일으킨다. 옷을 파고든 불길은 가장 먼저 살을 태우고, 다음으로 근육과 뼈로 파고든다. 근육이 잔뜩 뒤틀리면서 죽은 자의 몸이 꿈틀거린다. 남아 있던 마지막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언덕에 자리 잡은 구경꾼 중 하나가 돼 이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그렇게 재로 변해 가는 사람을, 몸을, 뼈를 본다. 불가촉천민 출신의 일꾼 하나가 기다란 막대기로 뒤적뒤적 남은 뼈들까지 가루로 부수고 항아리에 담아낸다. 항아리를 받은 가족들이 죽은 자의 재를 강물에 훠이 훠이 뿌리고 나서야 여행자들은 정신줄을 되찾는다. 삶의 소중함을 느꼈을지, 허망함을 느꼈을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이 넋 나가는 시간에 중독돼서 바라나시에 한동안 눌러앉는 여행자들도, 화장터 뒤쪽 강가 숙소에서 자다가 가위눌리는 여행자들도 많은 것만은 분명하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최재훈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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