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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사장된 세계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 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노동자를 대리해 사용자와 싸우던 나는 사용자가 되고 말았다. 지난 5월 고용 변호사에서 새로 설립한 법무법인의 파트너 변호사가 됐기 때문이다. 변호사로서 나는 근로기준법을 무기로 싸웠으나, 사용자로서 나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할 수범자가 됐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내게 연장근로수당을 청구할 수 있고, 노동조합을 결성해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 점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10여년 전 상운이도 그랬다. 고향 친구 상운이는 그때 배달 알바를 했다. 상운이가 월급을 받는 날은 우리가 모이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 우리는 모이지 못했고, 상운이는 같이 일하는 형들과 ‘짱구왕돈까스’ 사장님을 찾아가서 기어이 돈을 받아 냈다. 적어도 찾아갈 사장이 누군지는 분명했다. 이제 ‘짱구왕돈까스’ 사장님은 더 이상 배달 알바를 고용하지 않는다. 대신 배달중개앱을 설치하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콜을 보낸다. 이제 상운이는 돈을 빌려 오토바이를 사야 하고 비싼 영업용 보험을 들어야 한다. 배달중개앱을 설치하고 그때그때 들어온 콜을 잡아 건당 3천원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다. 하루 종일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고 휴일도 따로 없다. 정해진 근무시간이 없고 그달 먹고살 만큼 수수료가 모일 때까지 콜을 기다려야 한다. 새벽까지 일해도 야간수당을 받지 못하고, 사고가 나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분명 같은 배달 일인데 이제는 찾아갈 사장도 사업장도 없어졌다. 상운이도 사용자가 되고 말았다.

법원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본다. 또한 근로자는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으므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면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제공자’의 남는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자’가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 운영자’가 연결시켜 주는 플랫폼(Platform) 경제, 혹은 공유(Sharing)경제 세계에서 상운이(서비스 제공자, 플랫폼 노동자)는 근로자인가 사용자인가?

먼저 상운이는 제공할 수 있는 재화가 ‘시간’밖에 없다. 집이라도 몇 채 있다면 남는 집을 제공하거나 공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남들에게 자기 시간(노동력)을 팔아야만 먹고살 수 있다. 따라서 건당 수수료가 달려 있는 배달 콜을 받을지 말지는 상운이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업무의 내용이나 가격도 자유롭게 정할 수 없다. 플랫폼은 업무의 내용과 조건을 이미 정해 놓고 특정 거리 내 또는 특정 시간 내에 배달 가능한 콜만 표시한다.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콜을 줄이거나 비활성화(해고)하는 식으로 페널티를 부여한다. 정해진 단가가 낮고 콜수가 많다면 급하게(위험하게) 배달할 수밖에 없다. 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은 소비자들의 후기가 대신한다. 소비자들의 후기와 불만은 상운이의 노동조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육신을 가진 사장님이 면전에 대고 지시하고 야단치는 대신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플랫폼 매뉴얼이 세련된 방식으로 이를 대신 수행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 플랫폼(Plat-form)은 평평한 정거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조건이 정해진 굴곡진 노동현장이다.

오토바이를 산 상운이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인가? 공유경제의 생태에서 자본가는 스스로 생산수단을 철폐했다. 대신 데이터를 소유한다. 사람들의 취향과 필요가 담긴 데이터를 독점한 채 서비스 제공자에게 이를 충족시키라고 유혹한다. 에어비앤비는 단 한 채의 집도 소유하지 않았고, 배달대행앱도 오토바이 한 대 소유하지 않았다. 대신 상운이는 빚을 내서 오토바이를 마련했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생산수단의 유지와 감가에 따른 비용은 이제 노동자의 몫이 됐다. 설령 공유할 재화가 제 몸뚱이와 남는 시간밖에 없더라도 말이다.

플랫폼 경제, 즉 공유경제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편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과연 전에 없던 산업이나 일자리를 창출시켰나? 있던 노동을 마치 노동 아닌 것처럼 기만하고 있지는 않은가? 먹고살기 위해 제 노동력(신체와 시간)을 남을 위해 쓸 수밖에 없는 노동자를 마치 사장님이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모두가 사장(社長)이 된 사회는 곧 노동이 사장(死藏)된 사회다. 모든 소비자는 또한 노동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손명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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