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학교
"2년 전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거리를 내려다봤어요. 거리와 건물, 그 속을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니 우리가 돈을 좇는 삶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묻고 싶었어요. 어른의 세계가 '돈 귀신'에 사로잡혀 돌아가는데 너희들도 이대로 좇아갈 거냐고."

이인휘(61·사진) 작가가 소설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 줘>를 쓴 이유를 설명했다. 노동소설을 주로 집필하던 작가가 '산하'와 '정서' 두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로 돌아온 이유는 짧고 명료했다. 그는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법을 잃어버린 어른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비추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26일 저녁 서울 구로구 신도림 오페라하우스 지하 소극장에서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 줘>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인휘 작가는 열악한 환경 속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린 소설 <폐허를 보다>로 2016년 만해문학상을 받았고, 지난해 현대차 노동자의 투쟁 이야기를 담은 <노동자의 이름으로>를 출간했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좌절감 느껴"

소설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영상을 전공한 산하가 졸업작품을 찍기 위해 청기마을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산하는 청기마을에서 자연과 어울려 사는 '정서'를 통해 '무한경쟁' '낙오자' '비정규직' '흙수저'라는 단어가 사라진 '공생의 삶'을 알게 된다. 하지만 청기마을에서도 마을 어른들을 중심으로 '폭염 속 물 이용' '태양광발전소 설치'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된다. 작가는 어른들의 냉엄한 현실과 소년 '정서'의 세계를 대비하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북콘서트는 장순향 무용가의 살풀이 춤으로 시작했다. 박경희·하명희 작가가 저자와의 대화를 이끌었다. 하 작가가 "청소년 소설은 처음인데 쓰는 데 어려움은 없었냐"고 묻자, 이인휘 작가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일본영화 중 청소년이 등장하는 영화 다섯 편을 보며 공부했다"며 "아놔, 헐 같은 표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친구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보고 배웠다"고 털어놨다. 그의 고백에 객석에서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 작가는 소설 속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정서가 마을회관에서 뛰쳐나와 산에 올라가 북을 치는 장면"을 꼽았다. 소설 속 정서는 청기산을 깎아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을 막지 못하자 깊은 좌절감에 빠져 산으로 달려가 북을 친다. 이 작가는 "무언가 바꾸고 싶어 힘을 보탰지만 크게 변화하지 않는 현실에 나 역시도 좌절감과 고통을 느꼈다"며 "정서의 심정에 유독 이입이 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노동운동의 기본정신 되찾아야"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 줘>는 노동현장을 직접적으로 담고 있지는 않지만 노동운동의 정신과 결을 같이한다. 이인휘 작가는 "공생은 노동운동의 기본 정신이자 뿌리"라며 "투쟁에만 집중하다가 제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는 노동운동은 '공생'이라는 정신을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노동자가 된 뒤 아직 비정규직으로 남은 동료를 돌보지 않는 현상도 노동운동의 기본정신을 공유하지 못해 발생한 사례로 거론했다.

이 작가는 "노동자가 제 이웃·친구·동료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스스로의 인생을 되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삶이 보이는 창>이라는 잡지를 만들고 소설을 써 왔다"며 "하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혹은 현장에서 힘들게 일하다 보니 노동자에게는 글이 잘 읽히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신이 사라진 노동운동에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북콘서트가 마무리될 때쯤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민중가수 우위영씨가 기타를 치며 노래했고 민중가수 이지상씨가 하모니카를 불며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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