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지부 사내하청지회가 하청노동자 조직화에 주력하면서 하청업체들이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공식적으로는 "노조가입은 자유"라면서도 소속 노동자들에게는 불이익을 언급하며 압력을 가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최근 사내하청지회에는 업체 대표나 관리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면 폐업하겠다"거나 "집회에 참석하면 블랙(블랙리스트)에 걸린다"는 식의 협박성 발언을 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을 위축시키고 노조가입을 방해하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한 명이라도 노조 가입하면 폐업" 협박

지회는 26일 소식지를 통해 '악질 부당노동행위 1호'로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 조선부문 회장인 정아무개 태창기업 대표를 지목했다.

지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원·하청 공동집회가 열린 지난 20일을 전후해 정 대표는 업체 관리자와 노동자들에게 "한 명이라도 노조에 가입하면 폐업하겠다" "조합원이 생기면 업을 접겠다" 같은 부당노동행위로 의심되는 발언을 수차례 했다.

정 대표 발언처럼 노조가입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노조 가입·탈퇴를 고용조건으로 하는 행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이다.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지회는 정 대표가 다른 업체 대표들에게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회는 "(정 대표가) 협력사협의회 감투로 업체장들에게 지침을 내렸다"며 "몇몇 업체장들은 아침 조회시간에 (정 대표와) 똑같은 멘트로 하청노동자들을 겁박하며 불법 대열에 합류했다"고 비판했다.

지회는 부당노동행위 증거를 수집한 상태다. 이형진 지회 사무장은 "같은 부서(도장부·건조부 등) 업체들끼리 노조가입이 의심되는 사람 명단을 돌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사무장은 "정 대표를 1호 악질 부당노동행위자로 지목한 건 협력사협의회 조선부문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 선을 넘긴 언행을 했기 때문"이라며 "부당노동행위를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다면 대화할 수 있지만 아니라면 법적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에 "(대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고, 들은 직원도 없다"고 부인하면서 "노조가입은 본인들에게 맡기는 거지, (회사가) 금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중공업 안팎에서 벌어지는 대대적인 하청노동자 가입운동을 부담스러워하는 속내를 내비쳤다. 그는 "(하청) 업체 입장에서야 (노조에) 가입해서 좋을 건 없다"며 "현대중공업도 자체 노조가 있으면 부담스럽듯이 (하청업체도)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2003년 사내하청노조 설립 후 '줄폐업 트라우마' 영향?

하청업체들이 노조가입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과거 사내하청노조 설립 당시 겪은 '폐업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인다. 2003년 8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현 사내하청지회)가 설립된 뒤 사내하청노조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속한 하청업체들이 줄폐업했다. 조합원 200명 이상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사업장에서 배제됐다.

하청업체 줄폐업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벌인 일이었다. 대법원은 2010년 3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들을 폐업시키는 방법으로 하청업체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킨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복직한 사람은 없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 등 동종업계 취업길까지 막혀 버렸다. 당시 현장에 형성된 '노조하면 다 죽는다'는 분위기가 지금까지 하청업체·하청노동자에게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형진 사무장은 "당시 사내하청노조 설립 이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하청노동자뿐만 아니라 업체장들에게도 트라우마였다"며 "자기 업체에 조합원이 생기고 늘어나면 원청이 기성금을 압박하는 형태로 폐업을 유도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업체 대표들과 관리자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