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교수노조

"강사들 처우 좋게 한다는 강사법을 시행한다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아요. 여전히 앞길은 막막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 강의경력 14년의 서양미술사 강사 조이한(52)씨가 한숨을 쉬었다. 대학에서 성악을 강의한 지 13년째라는 전유진(47)씨도 "불안하다"고 했다. "임용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렸다고 하는데, 공개채용에 지금 막 지원한 처지에서는 무슨 호들갑인가 싶어요. 1주일 동안 서류심사하고 2차 심사에 면접까지 이어지겠죠."

강사법으로 불리는 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8월1일 시행하는 법에는 시간강사에게 교원지위를 보장하고 방학 중 임금 지급을 적용하는 처우개선안이 담겼다는데 일선 강사들 반응은 좋지 않다. 현재 시간강사는 생존 게임장에 서 있다. 다가오는 2학기 강의를 맡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대학이 줄인 강좌수를 다시 늘리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공개채용 과정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강좌나 시간강사를 늘리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표명한 대학이 없다는 점에서 시간강사의 불안이 그저 기우로 그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학 강사법 시행 의지 있나? 강사들 불안 증폭"

"강의를 담당하던 기존 시간강사들이 줄어든 공개채용 규모에 불안해해요." 강태경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노조지부 수석부지부장이 귀띔했다. 고려대는 지난달 30일 1차 강사 공개채용을 시작해 이달 5일 마쳤는데 강좌수가 반토막 났다. 노조에 따르면 고려대가 공고한 1차 강사채용 대상 개설강좌는 3천718학점(주당 3천718시간)으로 2018년 대비 58%에 불과하다. 강 수석부지부장은 "2차 강사채용이 7월에 예정돼 있어 추후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대학은 강사를 최대한 줄이고 싶어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은 시간강사가 노조를 결성해 집단행동에 나설까 두려워한다"며 "강사법 시행 전 계약해 법 적용을 피하려는 건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강사법은 시간강사에게 교원지위를 보장하고 △1년 이상 임용기간·3년까지 재임용 절차 보장 △방학 중 임금을 지급하는 처우개선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대학을 압박할 수단으로 정부 재정지원사업 평가에 강사 고용 관련 지표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학은 처우개선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강좌수 줄이기를 활용한 시간강사 감축은 전국적 현상으로 보인다. 비정규교수노조 대구대분회에 따르면 대구대가 이달 초 전임교원을 대상으로 2019년 2학기 학과별 시간강사 수요조사를 해 보니 지난 학기 대비 필요한 강사가 절반으로 줄었다. 대구대분회는 아직 교양수업·교직과목에서 시간강사 수요가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해당 수치를 포함해도 대구대 시간강사 200여명을 임용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박은하 대구대분회장은 "학교가 3년 재임용 절차 보장을 명시한 강사법 시행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며 "쉽게 고용하고 해고하는 것이 전보다 어려워진 상황에서 리스크를 줄이려는 행태"라고 풀이했다.

"시간강사 불신 자초한 대학"
"강사비 줄이려 초빙교수로 전환 제안"


시간강사들 사이에선 대학이 강사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크다. 불신 이면에는 물론 경험이 있다.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시간강사는 교육자가 아닌 언제든 고용·해고가 가능한 대체 가능 자원으로 취급됐다. 강사 고용을 교육이 아닌 비용 문제로 저울질했다.

강사법은 2010년 5월 조선대 시간강사가 목숨을 끊은 뒤 2011년 국회를 통과했지만 네 차례나 유예됐다. 대학은 강사법 유예기간이 만료돼 시행이 예정됐던 2013년·2014년·2016년 시간강사를 눈에 띄게 줄였다. 2019년에도 예외는 없었다. '2019년 4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 196개 대학에서 올해 1학기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학점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만학점 줄었다. 강좌는 6천655개가 감소했다.

전유진씨는 "대학은 교육이 아닌 오로지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다"며 "언제부턴가 '음악의 이해' 같은 교양과목은 대학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미 기업화된 대학이 시간강사를 더 고용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은 시간강사를 겸임·초빙교원으로 전환하는 꼼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씨도 그 희생양이 됐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는 조씨에게 시간강사가 아닌 초빙교수로 계약하자고 제안했다. 조씨는 "시간강사와 대체 다른 것이 뭐냐"며 "시간강사계약서를 달라"고 대학측에 항의했다. 대학은 "그러면 강의를 배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조씨는 일자리를 잃었다. 조씨는 "학교는 저를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하청업체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며 "10년 이상 강의를 한 시간강사가 교육계를 떠난다는 것은 교육계에 심각한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겸임교원은 말 그대로 시간강사와 다른 일을 겸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7조4항은 초빙교수를 특수한 교과를 가르치게 하기 위한 자로 보고 있다. 겸임·초빙교원은 교원지위·재임용 절차 보장을 받지 못하고 방학 중 임금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대학은 이를 악용했다. 또 다른 사립대는 '초빙대우교수'라는 시간강사·초빙교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비전임교원 직군을 만들어 냈다.

"시간강사로 살려면 '투잡' '스리잡' 감수해야"

"시간강사만 해서는 기초생활비도 안 나와요. 한 학기 4개월 동안 번 돈을 6개월 동안 써야 해요. 대학은 돈을 덜 주려고 4개월 강의하는데 마지막 주는 시험 때문에 강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5주치만 정산해서 지급해요. 9학점 강의해도 월 수입은 150만원도 채 안됩니다. 생활하기 어렵죠."

조이한씨는 강사 수입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해 일반인 대상 예술·문화·교양 강좌나 기업체 강연·저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전유진씨도 처지가 다르지 않다. 전씨는 개인 레슨·성가대 지휘·공연수입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공개채용 과정을 통과해 예전 수준의 강의를 보장받게 된다면, 방학기간에도 강의료를 받는 강사법이 시행 된다면 그들은 웃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투잡' '스리잡' 신세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들은 보통 한 학기에 주당 9학점을 강의했다.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사립대 시간강사 평균 시간당 강의료 5만4천300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연봉은 1천466만1천원이다. 정부가 학기당 288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지만 강사 한 명에게 돌아오는 임금은 연간 100만원 미만이다. 이를 더해도 연봉은 1천566만1천원. 월 130만원 수준이다. 2018년 최저임금 157만3천770원에 크게 못 미친다. 당장 시간당 임금이 개선될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재정을 마련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조이한씨는 "시간당 5만원이라고 하면 많아 보이지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들이는 여러 활동을 생각하면 결코 큰 돈이 아니다"며 "교육자·학자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에는 강의료가 터무니없이 적다"고 지적했다. 김어진 분노의강사들 대표는 "시간강사라는 본업을 가지고 있는데도 다른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상황은 불합리하다"며 "시간강사가 안정적인 연구와 교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처우와 환경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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