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대법원은 누가 '근로자'인지를 보려면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를 따져 보라고 설명한다. 먹고살기 위해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땀 흘려서 일하는 사람이 근로자라는 말이다. 근로의 굴레 밖에 있는 사람이라면, 사장님 지시를 위반해서 죽거나 다쳤다면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시키는 대로 일하다가 피해 입은 불쌍한 근로자를 구제해 주는 게 산재제도인데, 말을 안 들은 사람까지 보상해 줘야 하냐는 말이다. 이런 사람까지 산재로 보상해 주면 근로자가 실수나 사고를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아무도 사장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37조2항)은 노동자의 고의·자해·범죄행위가 아닌 이상 노동자가 잘못했거나 실수해서 다치거나 죽어도 산재라고 규정한다. 산재보험법은 고의로 발생한 결과를 보험사고로 보고 보상해 준다면 아무도 위험을 감소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거나 일부러 사고를 내기 때문에 보험제도가 붕괴된다는 경험과 보험법 이론에 근거한다. 사람이라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잘못을 할 수도 있는데, 지시위반의 고의는 인정되더라도 일부러 결과를 발생시킨 게 아니라면 산재보험법 보호범위에 있다는 것이다. 산재보험법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잘잘못을 따져서 노동자가 정당하고 착할 때만 보상해 주는 제도가 아니다. 산재보험은 노동자가 서로 돕자는 사회연대 정신 위에 서 있는 사회보험 제도다. 산재보험금은 시혜적인 구제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자가 일함에 따라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다.

최근 대법원은 세법해석이 문제가 돼 감사원으로부터 회사에 17억원 상당의 손실을 끼쳤다고 평가받은 직후에 자살한 서울메트로 재정팀장의 죽음을 산재라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망인의 잘못이 징계사유에 해당하는지를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고인이 징벌받을 만한 일을 했더라도 업무를 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산재가 맞다는 것이다(대법원 2019. 5. 10. 선고 2016두59010 판결).

서울행정법원은 버스기사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를 치어 징계해고됐고 그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되더라도, 징계해고 절차를 겪으면서 생긴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은 산재라고 판결했다. 일부러 사고를 낸 것이 아니라면, 그 노동자의 잘못으로 사고를 냈어도 그 징계절차에서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산재라는 것이다. 만약 이 교통사고로 인해 신체에 손상을 입었어도 그 또한 산재임은 당연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버스기사인 젊은 노동자가 교통사고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개인적으로 합의금을 물어 준 직후 자살했는데, 설령 그 노동자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 게 맞다고 하더라도 사고처리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과 자살은 산재다. 직급이 낮거나 고용형태가 불안정할수록, 일터에서 갖는 권한에 비해 지나치게 과중한 책임을 지거나 민원인들로부터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실수나 지시 불이행으로 징계받을 만한 행동을 했거나 스스로 책임질 것을 강요받아서 정신질환에 걸리거나 자살을 해도 산재가 맞다. 노동자에게 어떠한 실수나 사소한 지시 불이행도 하지 말고 완전무결한 근로자가 될 것을 강요하는 굴레를 끊어서 부숴 버리고, 위험의 창출과 그로 인한 위험의 현실화라는 관점에서 사회보험으로서의 산재보험 보상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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