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출장 갔을 때다. 나흘간 머물며 단골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는 국회의사당 모퉁이 건너편에 있었다. 카페 창문으로 보면 길 건너 의사당 건물이 바로 보였다. 여유 있게 커피와 빵을 먹고서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의사당 건물에 바로 붙은 인도로 건물을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1층 창문 너머로 살펴보니 이른 아침이라 청소부들과 경비원들만 분주했다. 포퓰리즘 국가의 대명사로 불리며 온갖 시위대들의 데모로 악명 높은 아르헨티나의 국회의사당이 일반 국민과의 물리적 격리를 위한 담장이나 잔디밭 없이 바로 길가에 인접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노무현 정권 내내 대한민국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는 전경 버스가 인도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개혁적인 정권 같았지만 ‘경찰’ 국가의 속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위 중이던 노동자·농민이 경찰 폭력에 맞아 죽은 일도 있었다. 당시 가해자는 경찰이라기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국가폭력으로 간주해 금지하고 있는 강제노동(forced labour)의 희생양인 전의경들이었다.

해외 국가들 중에서 국회 본당 앞에 광활한 잔디밭을 조성하고 저 멀리 담장을 쌓고서 국민의 일상적인 접근을 가로막고 있는 나라는 몇 곳이나 될까? 담장이 없었다면 민주노총 위원장이 담장을 넘는 불법을 저지르는 일도 없었을 것인 바, 국회 주변에 국민 접근을 막기 위해 광활한 잔디밭과 담장을 설치하는 행태가 정상적인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국회 방호처 관계자는 “외곽은 경찰이, 국회 청사는 경비가 지키고 있다”며 “월담해서 국회에 침입하는 것에 대비해 국회청사 모든 출입문을 반폐문 상태로 해 두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경찰은 “국가 중요시설인 국회를 파손한 혐의로 (민주노총 간부들을) 검거했다”고 주장한다. 국회가 국가 중요시설인 것은 맞다. 하지만 국회는 군사시설이 아니라 민의를 대변하는 전당이다. 군사시설에 적용하는 보안경비 개념과는 다른 접근법을 적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법·제도적 사안이었다. 이런 문제를 다루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 참관을 하겠다고 노동조합 내셔널센터 수장이 요청했음에도 국회는 그의 방청을 거부했고 이에 항의하며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노조간부들을 막으려 경찰력을 동원했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사회적 대화를 지향하는 나라의 국회라면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방청을 허용하고 그 의견을 청취했어야 했다. 환노위 회의 자리에서 유리창을 깨고 문을 부수고 책상을 뒤엎고 의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현행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그런데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가 경찰력을 동원해 의사당 건물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정문을 봉쇄하고 100만 노동자 대표의 출입 자체를 막은 사태는 민주공화국 가치를 정면으로 짓밟는 일이다. 극우 정당인 자유한국당 출신이 국회의장으로 있었다면 모를까,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출신이 국회의장인 상황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일이다.

김명환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는 문재인 정부 개혁의 지속가능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삼성그룹의 이재용과 적폐 판사들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김명환은 감옥에 보내고 이재용이 자유로운 상황은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촛불항쟁이 열망한 '법의 지배(the rule of law)'의 복원을 짓밟고 '법을 이용한 지배(the rule by law)' 체제로 역행하려는 음모에 경찰과 검찰이 합작하고 사법부까지 가담하면서 노정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국가권력 안에 득실대는 강경 공안세력의 대응이 과격하고 거칠어질수록 노동운동의 대응은 더욱 냉정하고 유연해야 한다.

나날이 날카로워지는 노동 정세를 판단하는 중심에 조합원의 입장과 노동자 대중의 이익을 놓아야 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또다시 감옥에 가는 김명환 위원장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짜 촛불정부라면 하루속히 김명환 위원장을 석방해야 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