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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 지금 만나>

<우리 지금 만나>는 통일부가 제작지원을 한 3편의 단편영화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로 5월29일에 개봉해 상영 중이다. 김서윤 감독의 <기사선생>, 강이관 감독의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부지영 감독의 <여보세요>는 ‘통일’을 주제로 매우 다양한 장르와 만듦새를 보여 준다.

▲ 황진미 영화평론가

<기사선생>은 개성공단에서 만난 남남북녀의 짧은 연정을 담은 멜로물이다. 남한에서 개성공단으로 식자재를 운반하는 화물차 기사 성민(배유람)은 개성공단 식당에서 일하는 숙희(윤혜리)에게 연정을 느낀다. 성민이 숙희의 자전거를 고쳐 주고, 성민이 듣는 음악에 숙희가 관심을 기울이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식당 창고에서 짧은 밀회를 가진 두 사람은 이제 막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됐지만, 둘의 사랑은 기약 없이 단절된다. 개성공단이 갑자기 폐쇄됐기 때문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자막과 실제 개성공단 사진을 통해 이런 만남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었음을 설득한다.

픽션과 논픽션 사이

개성공단은 2004년에 첫 가동된 이래 북측 노동자 5만4천명, 남측 노동자 80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16년 남한의 일방적인 철수조치로 폐쇄된 뒤 현재까지 방치된 상태다. 영화는 ‘먼저 온 통일’이라 일컬어지던 개성공단이 어떤 곳이었으며,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며 만났는지 보여 준다. 또한 갑작스런 폐쇄조치가 어떤 상실과 단절을 초래했는지도 애틋한 멜로로 전달한다. 다만 ‘개성공단 내 남남북녀의 짧은 설렘과 기약 없는 이별’이라는 서사가 통일 영화의 기획으로 가장 쉽게 떠올릴 만한 상투적인 설정이라는 점이 다소 아쉽다.

<우리 잘 살 수 있을까?>는 언뜻 보면 통일이란 주제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결혼을 앞둔 오랜 연인이 티격태격하다 화해하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회의하는 순간 남북철도 연결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 화면을 겹쳐 놓는다. 둘의 다툼이 일종의 비유로 쓰였으며, 통일을 앞둔 남북한의 화합도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유는 서사와 유기적으로 녹아들지 못한다. 이들의 다툼이 말이 아닌 춤으로 해소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서로의 춤을 따라 추는 행위를 통해 화해에 이르는데 이는 남북이 말이나 논리나 머리가 아니라, 행위와 존재와 몸의 부딪힘으로 서로의 동질감을 회복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영화를 최대한 좋게 해석했을 때 추출되는 의미일 뿐 자연스럽게 설득되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는 최고의 댄스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데, 이를 위해 주인공으로 섭외된 하휘동·최남미의 춤이 상당히 볼만하다. 통일 영화를 빙자해 이들의 퍼포먼스를 즐기는 것도 과히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북한이탈주민·중년 여성노동자, 부재하는 존재

앞의 두 편에 비해 <여보세요>는 뛰어난 만듦새와 신선함을 지닌다. <카트>를 찍었던 부지영 감독은 중년 여성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남북 여성들이 우애로 맺어지는 과정을 담는다. 최근 <미스터 션샤인> <눈이 부시게> <미성년> <기생충> 등에서 명연기를 보여 주고 있는 이정은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다.

정은(이정은)은 비혼 여성으로 치매에 걸린 노모와 둘이 산다. 낮에는 급식 주방일을 하고, 저녁에는 건물 청소일을 하며, 엄마의 요양병원비를 번다. 어느 날 정은은 조선족 말투의 전화를 받는다. 보이스 피싱이라 생각한 정은은 전화를 끊지만, 이후로도 여러 번 전화가 걸려 온다. 여기는 ‘북조선’이고, 남한으로 간 아들과 연락이 끊겼으니, 아들을 좀 찾아 달라는 것이다. 황당하고 꺼림칙해 거절하지만, 정은은 결국 그와 거래를 하게 된다. 실향민인 어머니가 한국전쟁 때 헤어진 여동생을 한사코 찾는 통에, 통화할 목소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은은 북한 여성의 아들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 북한이탈주민과 관련한 것들이 많다. 그동안 관심이 없어서 몰랐을 뿐 북한이 훨씬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의 가족들과 휴대전화 앱을 통해 무료통화를 한다는 사실에 정은은 충격을 받는다. 그는 처음 국가보안법을 언급한 직장 동료의 말 때문에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지만 “차로 2시간 반만 달리면 평양이에요”라며 북한 주민과의 교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수녀님의 말에 마음을 놓는다. 하기야 3만명이 넘는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 정착해 있으며, 그중 60%가 브로커를 통해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하고 있는 시대다. 이제 북한이탈주민은 입출입이 좀 까다로운 곳에서 온 이주노동자에 가까울 뿐 그리 이질적인 존재도 아니다.

정은과 북한 여성의 통화는 기묘한 경계의 지점을 잘 보여 준다. 정은은 통화하면서 연신 주위를 힐끔거리며, 북한 여성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여전히 외적인 금기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별에서 온 그대>와 <태양의 후예>를 좋아하고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내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을 묶는 것은 가족애다. 이들은 서로를 친구 같다고 말하거나, 친구라고 둘러댄다. 마지막에 정은이 더 이상 북한 여성을 도울 수 없게 된 상황에서도 북한 여성은 정은의 노모에게 기꺼이 동생 노릇을 해 준다. 등가교환의 관계가 아니라, 어느새 “백합 같은 내 동무”가 된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은이 자기 주변에 있던 북한이탈주민을 알아보고 그에게 마음을 여는 것으로 나아간다. 영화 도입부에 손을 벤 정은이 휴게실에 들어설 때 그는 구석에서 “내 걱정은 말라”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정은도 으레 조선족이려니 생각했을 뿐이다.

평범한 남북 여성의 보편적 연대

영화는 이처럼 늘 곁에 있지만 관심이 없어서 몰랐던 북한이탈주민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김혁이라는 이름의 북한이탈주민들이 다양한 직업을 갖고 살고 있듯이, 우리 곁에도 북한이탈주민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정은과 같은 중년 여성들도 늘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처럼 취급되지 않았던가.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평범한 노동자와 북한(이탈)주민이 만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친구가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통일의 모습이 아닐까. 그동안 <태풍> <공동경비구역 JSA> <의형제> <공조> <강철비> <공작> 등 남북의 남성들이 국가를 대표하며 만나 서로 총을 겨누다가 눈물겨운 형제애를 확인하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여보세요>는 남북을 대표할 것도 없는 평범한 남북의 여성들이 경계를 허물고 친구가 돼 서로의 가족을 돌보는 보편적 연대를 담아 내며, 이 과정을 통해 이웃을 향한 시선과 연대가 확장되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 준다. 이처럼 따뜻하고 의미 있는 통일영화를 만든 부지영 감독과 이정은 배우, 그리고 북한 여성 목소리로 출연한 이상희 배우에게 지지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황진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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