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ㅅ어린이집.

“안녕.” “나 퀵보드 타고 왔지롱~.” “XX야, 나 아침에 빵 먹었다~.”

간밤에 어디 멀리라도 다녀온 듯 저마다의 방법으로 인사하는 아이들로 ㅅ어린이집 앞이 시끌벅적하다. 아이와 함께 온 엄마들도 이래저래 인사하느라 분주하다. 간혹 할머니와 함께인 아이도 눈에 띈다. 역시 여성이다. 한데 저기 익숙지 않은 실루엣이 보인다. 원하는 밥을 해 주지 않았다고 투덜대는 아이를 다독이느라 정신없는 아빠. “저녁에는 꼭 계란밥을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토라진 아이 마음이 풀린다. 아침부터 입씨름하느라 회사에 지각한 아빠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헐레벌떡 뛰기 시작한다. 그 곁을 자전거 한 대가 스친다. 덩치 큰 아빠에 가려 자전거 뒤에 앉은 아이 모습이 살랑인다. 아이와 잘 놀아 주기로 소문난 아빠다. 아이는 아빠 품에 한참을 안겨 있다 친구들 속으로 사라진다. 매일 아침 펼쳐지는 ㅅ어린이집 앞 풍경이다.

육아휴직을 하는 남성도, 아빠 육아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돌봄노동 주체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조금씩 옮겨 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상은 어떨까.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었다지만 주위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남성 육아휴직자는 “놀아서 좋겠다” “그래 봤자 남자들이 애를 제대로 보겠어?”라는 부러움 섞인 비아냥을 듣기 일쑤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돌봄노동 주체가 되는 것은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육아하는 아빠들이 뭉쳤다. 돌봄노동 주체로 선 아빠들이 말하는 아빠 육아의 현실과 그들의 고군분투기를 맥주 한 잔에 털어놨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성미산자락에서 만난 아빠들은 세상의 편견과 싸우며 작지만 큰 파동을 만들고 있었다.

남성 육아휴직 늘고 있지만
1개월 육아휴직에 4년 괴로워


10살·7살 두 아이 아빠인 하트(41)는 1년 넘게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육아휴직은 지난해 9월부터 했지만 실제로 일을 쉬며 육아에 전념한 건 같은해 3월부터다. 그의 일상은 아내 출근 후 두 아이를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는 걸로 시작된다. 초기에 그렇게 힘들었던 아이들 밥 먹이기는 이제 좀 수월해졌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TV를 보여 주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터득했다. 물론 아침에는 아이들을 빨리 집에서 내보내야 하기에 최대한 아이들 뜻에 맞춰 준다. 그것 역시 1년여간 육아를 전담하며 터득한 노하우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마을 방과후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돌아오면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함께 놀다가 재운다. 퇴근시간이 고르지 못한 아내가 최근 일주일에 두 번 운동을 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시원하게 말해 줬다.

아침 일찍 출근해 별 보며 들어오기 일쑤였던 솔방울(45)은 육아전담 2개월차다. 일에 파묻혀 살던 솔방울이 육아를 전담하게 된 건 아내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늘 바쁜 솔방울을 대신해 육아와 살림까지 도맡았다. “이렇게 하다간 더 이상 가정을 꾸려 나가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던 어느 날 “변화를 가져 보자”며 일을 접고 아내 대신 육아를 맡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니까 아이를 자주 보지 못했죠. 언젠가 출근하는데 5살 아이가 ‘아빠 또 놀러 오세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과 고용보험법에 따르면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가진 노동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사용자는 최대 1년(한 자녀에 대해 남녀 노동자 각각 1년씩 총 2년 사용 가능, 부모 동시사용 불가)을 부여해야 한다.

모든 남성이 하트처럼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트 역시 쉽지 않았다. 처음 그가 육아휴직을 언급했을 때 직장에서는 “어딜 가냐”는 반응이 나왔다. 그나마 하트는 환경이 좋았다. 9개월 동안 일을 쉬며 딸아이 돌봄에 전념한 수리수리(38)는 “일을 아예 쉬었기 때문에 육아가 가능했다”며 “10년 동안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쓴 남성은 단 두 명뿐이었다”고 말했다. 두 명 중 한 명은 육아휴직을 한 달 다녀온 뒤 직장상사로부터 4년간 괴롭힘을 당했다.

아이를 돌봐 주셨던 장모님의 휴가로 3개월 육아휴직을 한 풍경(43)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노동조합 상근활동가 3년차인 그는 성평등한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이 높은 환경에서 일해 다른 이보다 나았지만 남성 육아휴직이 자연스런 분위기는 아니라고 했다.

“노조라고 해서 남성 육아휴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다른 아빠들도 보통 2~3개월 정도만 쓰더라고요. 아직은 남성 육아휴직이 안착되지 않았어요.”

고용보험 가입자 기준 남성 육아휴직자는 2009년 502명에서 지난해 1만7천662명으로 35배 증가했다. 2003년 전체 육아휴직자 중 1.5%에 불과했던 남성 육아휴직자는 2017년 13.4%, 지난해 17.8%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육아휴직 사용기간에 성별 차이가 존재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여성이 평균 303일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남성은 198일에 그친다. 남성은 3개월 이하 사용률이 41%로, 9~12개월 육아휴직 사용률이 73.3%인 여성보다 단기간 활용비율이 높다. 남성 육아휴직자의 62.4%가 300인 이상 기업 소속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 정기훈 기자

별 보고 퇴근하던 아빠가 사회적 편견에 맞선 시간
두려움과 공포를 없앤 육아휴직


오랜 세월 양육자 역할을 담당한 여성에게도 육아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 보조자로 살아온 아빠들에게 좌절과 위기는 지극히 당연하다.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동원해 만든 음식이 외면받는 건 다반사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하지만 몇 숟가락 뜨지 않는 아이 모습에 좌절한다. “나름 간도 약하게 하고 맵지 않게 했는데 애가 잘 안 먹는다”는 수리수리의 말에 하트는 “안 먹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송곳 답변으로 수리수리의 가슴을 찔렀다. 곁에서 연신 사진을 찍던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기자는 “맛이 없는 것”이라며 후벼 파진 가슴에 소금을 뿌렸다. "독박육아 4년차"라 자처하는 정 기자는 쌀을 푸다 계란을 꺼내고 된장찌개 재료를 생각하다 쌀 안치는 걸 까먹던 초짜시절을 지나 이제는 밥하고 찌개 끓이고 반찬 만드는 일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게 됐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맛이 없다”는 말에 아빠들은 순간 침묵으로 수긍을 대신했다.

“아빠는 남자니깐 씻는 건 엄마랑 하겠다”는 아이의 선전포고에 진땀 흘리고, “엄마가 올 때까지 자지 않겠다”며 두 눈 부릅뜬 채 아빠의 달콤한 밤 시간을 앗아 가는 아이 앞에 좌절하는 시간은 허투루 지나지 않았다.

풍경은 “아이와 하루를 온전히 보내야 한다는 게 공포였다”며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어떻게 버틸지, 삼시 세끼는 무얼 챙겨 먹일지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차라리 나가서 일하는 게 백배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렇게 딱 한 달이 지나니까 공포심은 사라지고 아내 없이도 아이를 재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솔방울의 5살 아이는 아침에 눈 뜨면 여전히 엄마를 찾지만 이제는 아빠와 지내는 게 익숙해졌다. 솔방울이 더 이상 홀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된 건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한 지난 2개월 덕이다.

“모든 게 서툴고 어렵죠. 겨우 2개월인데요. 그런데 이 시기가 아니면 아이와 시간을 보낼 날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하트는 “엄마가 필요했던 일을 아빠와 해결하는 아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며 “육아휴직을 했기 때문에 생겨난 변화”라고 전했다.

자꾸 작아지고 움츠러드는 아빠들
맘카페? 우리는 '아빠육아연대'를 원한다


아이와 단둘이 찾은 쇼핑몰에서 밥투정하는 아이와 씨름하며 느꼈던 시선. 아침이면 어김없이 꺼내 드는 셔츠. 육아하는 아빠들에게 꽂히는 사회적 편견에 아빠들은 자꾸 움츠러든다. 풍경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때 슬리퍼는 못 신겠더라고요. 긴 바지와 셔츠를 꼭 챙겨 입어요. 항상 양치질에 면도까지. 아침에 바쁘면 편하게 갈 수도 있는데. 그게, 자꾸 의식이 되더라고요.”

풍경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트 역시 “어린이집은 모르겠는데 학교 갈 때는 좀 그렇더라”며 “반바지는 못 입고 가겠다”고 거들었다. 이들이 느끼는 불편한 시선은 수리수리가 들은 이야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평일 낮에 동네를 오가면 직접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이 꽤 있더라고요. ‘왜 이 시간에 집에 있냐’고요. 휴직 중이라고 말하긴 했죠. 남자가 평일 낮에 집에 있으면서 육아를 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시선이 많아요.”

2015년 당시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 초등학교 1~2학년 교과서에 '성역할 고정관념'이 담긴 내용이 반영돼 논란이 일었다. 은행원·돌봄노동자·사서·급식배식원은 예외 없이 모두 여성으로, 기관사·해양구조원·과학자·기자 등은 모두 남성으로 그려졌다. 생계부양자는 남성이었고, 아픈 아이를 간호하거나 아이의 병원진료를 돕는 것은 여성이었다.

“오후 4시가 되면 아이들이 아파트단지 놀이터로 모여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을 지켜봅니다. 저는 끼지 못하고 멀찍이 서 있어요. 굳이 휴대전화를 보죠. 성격적인 한계도 있겠지만 어울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풍경)

“저는 여성이랑 대화를 잘하는 편인데도 엄마랑 아빠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이 있더라고요. 아이 이야기를 하며 엄청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더 깊어지지 않는 지점이 있습니다. 아빠들도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해요. 아빠육아당 같은 거.”(하트)

육아하는 아빠들은 아빠 육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에 기반을 둔 육아소통의 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육아휴직제 사용이 집중되는 ‘정규직·대기업·공무원’을 넘어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 노동자·자영업자 등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아빠육아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아빠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 정기훈 기자

아빠 육아휴직? 강제·유인 투트랙으로
남성 육아휴직 확대하려면 소득대체율 높여야


아빠들은 돌봄노동 주체로서의 현재 모습에 만족해했다. 더 많은 아빠가 돌봄노동 주체로 서길 바랐다. 정부는 아빠육아휴직보너스제를 강화하며 휴직기간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등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남성의 육아휴직제 활용률을 높이기도, 일·가정 양립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도 힘들다. 수리수리는 “정부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시행했듯 아빠 육아휴직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기업들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풍경은 “아빠 육아휴직을 강제하는 것이 옳다”며 “3개월이라도 강제적으로 육아휴직을 쓰게 하는 동시에 육아휴직급여를 높이는 유인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 두 번째 휴직자 첫 3개월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로, 월 상한액을 2017년 7월 이전 15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올렸다. 두 번째 휴직자가 대부분인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육아휴직급여 한도가 올랐다지만 마지노선이 정해져 있잖아요. ‘임금의 몇 퍼센트’로 기준을 바꾼다면 아빠 육아휴직 사용이 늘어나지 않을까요?”(수리수리)

“첫 번째 육아휴직에도 휴직급여를 많이 줘야 해요. 두 번째 휴직자에게 더 많은 휴직급여를 주는 것 역시 차별 아닌가요?”(풍경)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육아휴직급여 소득대체율은 32%에 머물러 있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은 국가의 육아휴직급여 소득대체율은 70% 이상이다. 남성 육아휴직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빠전속 육아휴직 기간의 길이보다는 소득대체율이다. 아이슬란드·노르웨이·핀란드·스웨덴은 남성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한 상태다. 할당된 기간을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기 때문에 남성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테이블에 맥주 캔이 쌓이는 만큼 아빠들의 육아수다도 깊어졌다. 밤 10시 아이들의 칭얼거리는 소리에 아빠들은 못다 한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뤘다.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