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서이동 후 새로운 상사와 일을 하게 된 A씨. 점심시간까지 간섭하는 상사의 행동을 담당임원에게 얘기했다가 곧바로 보복을 당했다. 다른 직원들 앞에서 "고자질쟁이"라고 A씨를 모욕한 상사는 다음날 "30분 단위로 업무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시켰다. A씨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이튿날 새벽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2. B씨는 "화분이 말랐다"며 직원들을 소집해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며 폭언한 상사를 생각하면 아직도 울화통이 터진다. 상사는 "화분이 말랐는데 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직원들을 닦달했다. 그는 "업무 외 일이 싫으면 나가라"거나 "어디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냐"고 소리를 질렀다.

#3. C씨는 매일 자신의 외모와 신체를 비하하는 반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걸음걸이를 고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폭언까지 들었다. 개인 사정으로 교대근무를 할 수 없는 C씨에게 반장은 "일 똑바로 못 하면 교대근무에 쳐넣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일삼았다. 다른 직원들에게 수시로 C씨 험담을 했다.

'이런 꼴 당하려고 어렵게 회사 들어간 게 아닌데….' 상사들의 갑질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직장인 A씨·B씨·C씨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었을 법한 생각이다. 최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사례들로, 다음달 16일부터 직장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런 무개념 상사들의 행동은 '괴롭힘'으로 판단돼 징계 대상이 된다.

그런데 사업주나 노동자 모두 긴가민가한다. 어디까지를 괴롭힘으로 볼 건지, 상사 갑질을 신고하면 해결은 되는 건지 혼란스럽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2월 발간한 '직장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기초로 사업주와 직장인들이 알고 준비해야 할 내용을 톺아봤다.

갑질 상사 '철컹철컹' 가능할까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에 따라 직장내 괴롭힘을 알게 된 경우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면 지체 없이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해야 하고, 괴롭힘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피해자가 요청하면 근무지 변경이나 배치전환, 유급휴가 부여 같은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괴롭힘 행위자에게는 징계·근무장소 변경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신고를 이유로 사용자가 피해자나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직장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회사에 신고하면 갑질 상사를 철컹철컹(형사처벌) 할 수 있느냐'다.

결론부터 말하면 처벌할 수 없다. 가해자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개정 근기법 76조3(직장내 괴롭힘 발생시 조치)은 사용자에게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조사 의무와 피해자 보호 의무, 가해자 징계조치 의무만 부여할 뿐이다. 대신 직장내 괴롭힘 예방·대응 규정을 취업규칙에 반영해야 한다. 사업장별로 알아서 괴롭힘 방지 시스템을 만들라는 얘기다. 10인 이상 사업장은 기존 취업규칙에 △금지되는 직장내 괴롭힘 행위 △예방교육 △괴롭힘 발생시 조치 △징계 조항 △재발방지 대책 등을 추가하거나 별도의 직장내 괴롭힘 예방·대응 규정을 제정해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를 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500만원이 부과된다.

직장내 괴롭힘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개정 근기법 76조의2(직장내 괴롭힘의 금지)는 직장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했다.

어떤 행동이 직장내 괴롭힘이 되려면 세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첫째,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에서 우위를 이용했는지 여부다. 직위·직급뿐만 아니라 연령·학벌·성별·출신지역·인종·근속연수·전문지식 등 사실상 우위에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관계가 포함된다. 노조·직장협의회나 감사·인사부서 같은 직장내 영향력,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여부도 판단기준이 된다.

둘째,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 여부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도대체 적당한 선이란 게 어디까지인가'를 찾는 것이다. 기준은 '업무상 필요성'과 '사회통념'이다. 특정행위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것으로 인정되려면 사회통념상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행동양태가 사회통념상 상당하지 않아야 한다. 폭행·폭언·험담, 반복적인 개인 심부름, 왕따, 과도한 업무 부여, 인터넷·사내 인트라넷 접속 차단 같은 행위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퀴즈 하나. 신상품 발표회를 앞둔 의류회사에서 '이번 시즌 신제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서원에게 여러 차례 디자인 수정을 요구해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를 준 팀장의 행동은 직장내 괴롭힘일까?

노동부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부서원이 아무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도 팀장에게는 신제품 발표회를 앞두고 성과향상을 위해 업무지시를 할 수 있는 업무상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팀장의 디자인 수정요구 빈도수가 어느 정도인지, 업무 지시를 내리며 과도한 질책을 하거나 다른 직원들 앞에서 모욕을 줬다면 직장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

마지막 판단기준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는지 여부다. 화장실 앞에 책상을 놔두거나 벽을 보고 일하게 하는 '면벽근무'처럼 노동자가 일하는 데 적절한 환경이 아니라면 직장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

직장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 '헐겁네'

노동부는 매뉴얼에 수록한 '취업규칙 표준안'에서 직장내 괴롭힘 행위를 △폭행·협박 △욕설·폭언 △모욕·험담 등 명예훼손 △사적 용무 지시 △업무능력·성과 불인정·조롱 △따돌림 △업무와 무관한 허드렛일 지시 △상당 기간 업무를 안 주는 행위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등 9가지로 규정했다.

취업규칙 표준안에 명시된 9개 항목으로 천태만상인 갑질행태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직장내 괴롭힘 사례를 보면 회식·노래방·체육대회·장기자랑 강요, 태움, CCTV 감시에 이르기까지 괴롭힘 유형이 다양다종하다"며 "취업규칙 표준안을 보완해 시비 소지를 줄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국가기관이 나서 괴롭힘 유형을 하나하나 지정해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사업장 인사노무 관리가 너무 경직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며 "표준안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예시이기 때문에 각 사업장별로 금지가 필요한 행위를 추가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 시행 후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언론보도나 판례·상담을 통해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괴롭힘에 대한 공감대와 경험이 쌓이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해자 처벌조항 부재와 모호한 괴롭힘 기준만큼 논란이 되는 것은 가해자가 대표이사나 사장일 경우다. 매뉴얼에 따르면 감사가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대표이사 갑질을 조사한 뒤 이사회에 보고하게 된다. 그러나 이사회나 감사가 없는 사업장이 많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박점규 운영위원은 "노동부가 '사장 갑질' 신고를 받으면 근로감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사업장들은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동일하게 임금 떼먹거나 노동시간을 안 지키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7월16일 개정 근기법 시행 후 사용자가 괴롭힌 사례를 접수해 피해자 대신 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청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 '갑질 감수성'은 어디쯤?

한편 직장갑질119는 조만간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직장갑질(직장내 괴롭힘) 감수성' 지수를 조사한다. 직장갑질 감수성 체크리스트를 통해 직장인들이 직장내 괴롭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자신의 '갑질지수'는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점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조사 결과는 다음달 16일 공개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체크리스트 문항 중 일부를 소개한다. 자신의 갑질지수가 대한민국 직장인 평균보다 높은지 낮은지 체크해 보시라. 자신이 숨어 있던 '갑질 대마왕'일지도 모를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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