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올해는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가 만들어진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제네바에서는 100주년을 맞아 108차 총회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ILO의 설립이념(사회정의·social justice)과 실천방안(좋은 일자리·decent work)을 더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담아 ‘Advancing social justice, promoting decent work’를 기치로 내걸었다. 수년 전부터 준비한 ‘일의 미래(future of work)’에 관한 선언이 결실을 맺을 예정이다.

제네바는 거대한 축제장이다. 공항 입국장을 시작으로 시내외 곳곳에는 ‘ILO 100주년을 축하한다’는 광고가 즐비하다. 단순한 생일이 아니다. 노사정 각 주체가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킨 100년이다. 홈페이지에는 ‘happy birthday ILO’라고 이름 붙여 각국에서 보낸 축하영상이 즐비하다.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지난 100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1944년에 버금가는 선언문을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세계인의 축제를 맞는 우리의 모습은 그저 초라하다. 정부에서 국민을 상대로 공식적인 축하성명을 발표했다거나, 더구나 노사정이 모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특별한 행사를 한다는 뉴스도 듣지 못했다. 대통령이 북유럽 순방에서 “ILO 핵심협약은 공약이므로 연내에 비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정도가 성과랄까. 다행히 아직도 시간은 있다. 여전히 총회 기간이고 지난해부터 계속 논의한 ‘일터에서 행해지는 폭력과 괴롭힘 근절을 위한 기준’ 마련 같은 큰 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채택에 즈음해 대통령이 직접 축하인사를 한다면 어떨까.

“한국노총은 대한민국 제1 노총으로서 ‘K-labor’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을 대표해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내놓은 일성이다. 나만의 생각일까. 100주년을 맞는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잘 표현하지 않았나. ‘K-labor’, 처음이지만 왠지 처음이 아닌, 이보다 신선한 표현을 최근 들어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처럼 국경을 가리지 않는 열렬 애호층을 가진 음악(K-pop)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같은 영화(K-movie)가 세계를 주름잡을 만큼 대한민국 문화(K-culture)가 그야말로 높은 평가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100년을 돌이켜 봤을 때 우리의 문화가 이토록 융성한 때가 있었을까. 백범이 그토록 원했던 “높은 문화의 힘”이 드디어 한반도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섣부른 기대도 해 본다.

하지만 많은 분야에서는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에서 크게 뒤떨어진다. 굳이 한 곳을 꼽아야 한다면 단연 노동기본권 문제를 들 수밖에 없다. 객관적 통계만으로도 ILO에 가입한 187개 회원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낙제점이다. ILO에서는 홈페이지에 각국의 ILO 기본협약(98호 외 7개) 비준 현황을 보고하고 있다. 다들 알고 있지만, 우리는 꼴찌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하고 말 걸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김주영 위원장만큼 이러한 상황을 꿰뚫고 있는 이가 있을까. 그래서 ‘K-labor’는 성과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이룩해야 할 목표로 뒀다. 앞뒤 쉼 없이 진행되고, 연설시간이 고작 5~6분에 불과해 그저 형식적으로 지날 수 있는 게 총회 연설이다. 그 짧은 시간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해야만 한다. 대한민국 제1 노총 위원장으로서 책임감과 지난 기간에 대한 깊은 회한까지 풀어 낸, ILO 100주년을 기념할 만한 훌륭한 연설이라 평가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각국 대표자들에게 큰 박수와 호응을 얻었다는 소식이다.

사실 김 위원장은 2년 전 취임하면서 2019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대한민국이 세워진 지 100년인 동시에 ILO가 만들어진 지 100년이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노동계의 수장으로서 누구보다 뜻깊은 100주년을 맞이하고 싶었을 것이다. 100년을 기점으로 평화의 한반도를 위해 한국노총이 앞장서겠다는 다짐을 누누이 밝혔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목표는 주위 환경과 함께 큰 울림이 있었다. ‘노동존중 사회’를 국정목표로 삼은 정부가 힘 있게 출범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앞장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100만 조합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래서 100주년이 되는 2년간 ‘노동존중 사회’의 완전한 실현은 아니더라도, 그 목적을 향한 쉼 없는 과정에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목적·수단·방향 모든 면에서 갈 길을 잃었다는 게 오늘의 평가다.

아마 김 위원장은 ILO 100주년을 맞아 노동계 대표로서 “이제 우리의 노동기본권과 노동환경도 그 어느 분야 못지않게 세계 속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노사정 모두가 합심해 노력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배우고, 본받고 싶은 K-labor로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하고 만방에 자랑하고 싶지 않았을까. 다음번엔 꼭 그랬으면 하고 소망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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