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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암묵적 동의, 빼앗긴 '거부할 권리'이진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 이진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님, 그게 정말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상담 중 사용자의 동의 요청을 거부하라고, 동의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면 곧잘 돌아오는 대답이다. 이런 대답을 듣게 되면 갑자기 억울해진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전형적 ‘제 발 저리는’ 증세다.

그래서다. 가끔은 왜 모르겠냐고, 알고 있으나 법에서 규율하는 내용이 그렇다고 항변한다. 가끔은 알면 하셔야 한다고, 그래야 그 법 규정이 현실에서 쓰임 있게 되는 거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으면 암묵적 동의를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으름장까지 놓는다. 그러다가 결국 필자의 대답이 속 빈 강정 같았다고 인정하고야 만다. 몰라서 안 한 게 아니었던 과거의 기억이 소환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회사에 다닐 때 일이다. 사장은 매일같이 하는 연장근로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사장은 당일에 마쳐야 하는 일을 애초에 과도하게 잡아 놨다. 퇴근시간 즈음해서 “저녁 뭐 먹을까?” 묻는 사장 앞에서 퇴근하겠다고 하는 배짱 좋은 직원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입 직원이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먼저 퇴근하면 안 되냐고 했다. 놀랍게도 사장은 알았다고, 퇴근하라고 했다. 그날 퇴근길, 모두가 ‘저녁 있는 삶’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술렁였다. 다음날 조례가 소집됐다. 사장은 “개인 일을 회사 일보다 우선하는 사람은 우리 회사에 필요하지 않다”며 “개인 일이 우선인 사람은 나가라”고 했다. 전날 정시에 퇴근하겠다고 했을 뿐인 신입사원은 조례시간이 끝나자마자 울면서 사직서를 냈다. 몇몇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뒤를 이어 회사를 그만뒀다. 그 이후 남아 있는 그 누구도 평일 저녁에 약속을 잡는 경우는 없었다. 필자는 남은 사람 중 하나였다.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 없어서였다.

이날 일을 다시 생각해 보기를 수십 번 했다. 그래도 매번 필자의 결론은 같다. 동의해서 하는 연장근로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기 위해서는 체념해야 했던 정시퇴근이었을 뿐이다. 거부하지 않았다고 암묵적인 동의를 한 것이 아니었다. 거부하지 못한 채 무력감을 학습하는 시간이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개별 노동자 및 근로자대표의 합의(동의)를 요구하는 규정들이 많다. 법령에서는 개별 노동자와 ‘근로자대표’를 구분하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그 구분의 의미가 없다. 과반수노동조합 대표자가 아닌 이상에야 아무런 선출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용자가 지정하는 힘없는 개별 노동자가 형식적인 ‘근로자대표’가 되기 때문이다. 연장근로 및 각종 유연근로시간제 도입 및 시행, 휴일 및 연차유급휴가의 대체, 보상휴가제 실시 등 대부분 노동자들에게 불이익한 내용으로 변경시 적용하는 규정들이다. 진정한 의사로 자신의 근로조건이 불이익해지는 변경에 동의할 노동자가 어디 있나. 실로 형식적인 규정들이다.

법 규정의 문제만이 아니다. 회사를 계속 다닐 마음이 있는 노동자라면, 임금이 감액되는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라는 사용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대한 동의서를 부서장이 개별 직원들에게 받으러 다닐 때 사인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장이 퇴사하라는 말을 정중하게 우리 회사와 맞지 않으니 나가 주면 어떻겠냐고 물을지언정 자신에게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믿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위의 경우 법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권력 차이를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 집행된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경제적·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대법원 역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서 기본급이 정해져 있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등을 부수적 징표로 삼는 이유로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별 노동자의 동의가 자유로운 의사에 터 잡아 이뤄졌다거나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는 법 규정과 법 집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상담을 요청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대체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필자는 언제까지 제 발 저림을 느껴야 할까.

최근 어느 노동법 교수의 발제문에서 본 글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로마 법률가들의 저술집인 <학설휘찬>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로마시대부터 알던 건데, 새삼 이 시대에 모를 리 있을까.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픈 이유다.

“A person is not presumed to act of his own will who obeys the orders of his father or his master(가장권(家長權)이나 사용자의 지시권에 복종하는 자는 스스로의 의사로 행위한 것으로 추정되지 않는다).”

이진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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