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희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우리 회사는 너무 커서 회사에 100개가 넘는 공장이 있습니다. 공장마다 공장장이 있지만 작은 회사 공장장과 달리 권한은 별로 없습니다. 공장장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오해되고 있습니다. 이 공장장은 기업노조에 가입원서를 냈는데, 한 달 정도 뒤에 노조에서 반려를 하는 바람에 그 기간 동안 본인이 노조원이라고 생각하시고 자신의 기업노조가 회사 발전에 유리하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이런 사측의 말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노조가 생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경청하시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숨이 턱 막혔다.

공장장은 두 차례나 공장 소속 현장관리자를 소집해 회의를 했다. 회사 우호그룹은 ○, 불만이나 가입의사가 있는 직원은 △, 금속노조 가입이 의심되거나 확인되는 자들은 X로 직원 성향을 파악하라 명했다. 현장관리자들은 휘하 직원들의 금속노조 가입사실을 일일이 체크했다. 금속노조 가입 직원들의 일일 ‘케어’하는 방안도 공장장과 현장관리자 회의에서 토론했다고 한다. 직원을 케어할 주체와 수행 역할과 일일동향 파악이 제시되고, 금속노조 소속 직원들의 설득방안도 논의했다고 증거자료에 기재돼 있었다. 또 다른 회의자료에서는 현장관리자들이 근무 중 소위 '케어' 활동을 병행해 실시하고 있는 점과 확인된 3명의 금속노조 가입자를 집중관리해 다른 작업자에게 전파되지 않도록 차단할 것과 밀착대응해서 탈퇴를 지속적으로 권유하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공장장이 보낸 문자메시지에서도 관리자들에게 직원들 '케어'를 지시하는 내용이 발견됐다.

공장장이 한 일은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정도의 일일까? 그것도 대기업 공장장께서. 공장장 명의로 발송된 문서에 대해 사실은 공장장이 쓴 것이 아니고 하급 직원이 공장장 이름으로 발송한 것이라는 둥 궁색하기 짝이 없는 답변들, 근무시간에 회사에서 공장장이 소집한 회의를 통해 지시돼 실행된 사안임에도 공장장이 본인이 노조원이라고 오해를 해서 벌인 개인의 일탈일 뿐이고 회사는 책임이 없다는 무책임한 답변들이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이 선임한 대형로펌 대리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자꾸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해 주시는 듯한 그분들의 얼굴을 보며 “공장장의 행위는 회사의 부당노동행위고, 회사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면 사용자 권한을 분담하고 있는 공장장에게라도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을 내려 달라”고 소리 높이는 내 목소리가 공허하게 심문회의장을 맴돌았다.

결국 매출액이 한 해 수십조원에 이르는 회사에서, 100개도 넘는 공장의 각 공장장들은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사용자로 볼 수 없고, 회사가 직접 지시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아 부당노동행위가 아니고, 근로자에 불과한 공장장에게 구제명령을 내릴수 없다고 지방노동위원회는 판단했다. “이런 게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면 어떤게 부당노동행위냐”고 아우성인 조합원들에게 사용자성 법리와 부당노동행위 입증책임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던 중 불평등하다는 생각에 더 힘이 빠졌다.

노동권에 중요한 판결은 작은 회사 사건에서 탄생한다는 노동사건 하는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속설 하나가 떠오른다. 만약 이 사건이 대기업이 아니라 작은 회사였다면 어땠을까? 공장장이 오너에 버금가는 실권자고, 그래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돼 부당노동행위로 판정됐을까? 아니 회사 지시고 뭐고 간에 공장장 직책을 맡기는 수권행위만으로도 회사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구제명령이 내려졌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회사-준법감시인을 두고, 노동을 포함한 핵심 분야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해마다 내는, 당연히 대형로펌과 노무법인을 통해 노동법에 대한 숱한 자문을 받고, 사내에도 전문가를 여럿 둔, 일상적으로 노동법 등을 임직원들에게 교육시키는 시스템을 자랑하는, 수많은 작은 하청회사와 협력회사의 존립을 좌우할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큰 회사-공장장이 행한 이 사건 부당노동행위를 개인 영세 사업자가 정말 노동법에 무지해 저지른 경우보다 더 이해해 주고, 법리적인 구멍을 주장하는 사용자측 법리를 꼼꼼히 챙겨 인정해 준 이 사건 노동위원회 판정의 관대함이 불편하고 불쾌했다.

대기업에 오히려 더 투철하게 부당노동행위 금지의무를 부여해야 진짜 공평한 것이 아닐까. 사건을 마치고 이런 이질적인 불평등과 관대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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