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필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도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좋든 어렵든 사회적 대화는 노동조합 내셔널센터의 중요한 일상활동이다. 사회적 대화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는 정보를 나누고 협의를 하고 교섭을 하는 것이라 말한다.

노동조합의 가장 큰 문제는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관료와 사용자는 정보 제공을 꺼린다. 공개된 정보조차 양과 질에서 허접하다. 사회적 대화가 잘 안 되는 이유는 여럿 있지만, 그 하나가 자본가와 관료의 정보공개 거부다. 정보가 풍부하면 협의와 교섭도 덩달아 풍부해진다. 국가나 기업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당면한 도전과 극복 방안에 대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가능성이 커진다. 객관적 상황과 주체적 조건을 돌아보면서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할 때 실현 가능한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

정보 공유와 협의 경험이 축적될 때 사회적 대화는 교섭이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단체결성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노동권의 삼각형이라면 '정보-협의-교섭'은 사회적 대화의 삼각형이다. 꼭짓점 하나가 빠지면 삼각형은 완성될 수 없다. 정보와 협의를 충실히 다지지 않으면 교섭은 불가능하다. 한국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이 쉽게 ‘사회적 대타협’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이 민주노총의 ‘총파업’ 성사만큼 불가능한 이유는 축적된 정보와 협의의 경험이 너무나 취약하기 때문이다. 1998년 2월의 노사정 타협은 단군 이래 최대 경제위기라는 외환위기 사태의 비상한 결과였음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되풀이될 수 없다.

지금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가 파탄에 처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필자는 '정보-협의-교섭'이라는 삼각형에서 정보와 협의라는 두 축이 제대로 서지 않았는데도 교섭으로 밀어붙였던 정치권과 관료들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이른 봄 정부·여당은 최저임금제 개편 문제를 최저임금위원회 안에서 다시 논의하게 해 달라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요청을 야멸차게 내쳤다. 탄력근로시간제 개편이라는 그해 늦가을 청와대 여야 영수회담의 정치적 결정이 경사노위를 그릇된 방향으로 몰아갔다. 정권과 국회의 과도한 압력과 개입은 최저임금제와 노동시간 문제를 표류하게 했고, 부메랑이 돼 결국 문재인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보가 불충분하고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는데도 교섭과 합의를 밀어붙인 또 다른 사례로는 ILO 기본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법 개정 문제를 다룬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를 들 수 있다. 국가가 시민사회의 중요한 축인 노사 단체에 결사의 자유를 보장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를 두고 노사 양자가 알아서 합의하라는, 즉 국가의 결단 문제를 노사합의 문제로 둔갑시키는 희한한 작태가 연출됐다. 국가가 시민사회에 보장하는 자유권 문제임을 잘 알면서도, 국가의 ‘아바타’로 동원돼 부역한 법기술자들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ILO 기본협약 비준의 정치적 맥락과 운동적 의미를 간과한 채 법령 개정 문제로 접근한 노동운동 진영도 냉정한 자기비판이 있어야 한다.

1기 경사노위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공과를 평가하고 2기를 준비해야 할 때다. 청와대·정부·국회는 자신들의 입맛에만 맞는 메뉴를 들이대며 경사노위를 찍어 누른 일이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그 설계 과정에 참여한 경사노위가 기술관료들의 간섭에 휘둘리지 않고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체제 구축이라는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도록 자율성은 물론 인사권과 재정권의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잘 보장됐나 살펴야 한다.

다음으로 짚을 문제는 비정규·여성·청년 계층대표 문제다. 민주노총은 자기 결정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계층대표 3인은 열심히 참여하다가 탄력근로제를 둘러싼 일방적 결정 문제로 불참하고 있다. 양대 노총에 비해 조직적 대표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경사노위 설계 때부터 지적됐지만, 상징적 대표성을 높게 평가해 참여시켰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를 ‘펑크’냈다는 괘씸죄에 걸려 3인이 경사노위에서 축출될 거라는 소식도 들린다. 3인의 비협조를 탓하기 전에 이들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과 진지한 협의 진행을 보장했는지 정권은 돌아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성현 위원장과 박태주 상임위원 등 경사노위 자체의 리더십을 평가해야 한다. 장기투쟁과 구조조정 현안사업장 문제가 여럿 해결됐다. 여러 가지 구조적 제약과 어려움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성찬은 없지만, 테이블 밑의 성과는 작지만 여럿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대화의 판에서 수구 관료들의 준동을 제어하고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조합운동을 감싸 안으려던 시도는 돋보였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운동 출신이면서도 사용자와 정부 입장을 아우르는 균형감도 잃지 않았다. 노동의 입장에서는 너무 자본과 국가의 입장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불만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 1기 경사노위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노사정 3자 모두 법기술적 접근법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는 법기술 문제가 아니다. 법대 교수·변호사·판검사 같은 법기술자들의 지식과 경험으론 해결할 수 없는 정치 문제와 계급 관계가 산적해 있다. 대통령도 법기술자, 즉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업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정치적 관점으로 경사노위를 바라봐야 한다.

경사노위가 현재의 지지부진함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식의 무책임한 접근법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현실적 접근법이 더 유효해 보인다. 1기에 축적된 경험과 실력을 폐기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이미 쌓아 놓은 인력과 자원에 바탕해 전진해야 한다. 여기에 '정보-협의-교섭'이라는 사회적 대화의 세 가지 방법론을 유연하게 구사한다면, 2기에는 좀 더 알찬 활동과 성과가 가능할 것이다. 민주노총도 경사노위를 비롯한 여러 사회적 대화기구에 적극 참여해 운동적 소임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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