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에서 임금이 다스리는 체제는 1910년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붕괴했다. 1919년 3월1일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같은해 4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비록 왕조 타파는 스스로 이뤄 낸 일이 아니지만 민주공화국 수립은 “대한민국 인민” 스스로의 의지였다. 그 의지의 출발점이 3·1 운동이라는 점에서 3·1 운동은 새로운 법통을 세운 혁명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천명했고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을 선언함으로써 구체제 신분질서를 혁파했다.

1948년의 이른바 제헌헌법, 즉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헌법은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법통이 1919년에 건립된 임시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1948년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다”고 다시 한 번 천명했고 특히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일체 인정되지 않으며 여하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하지 못한다”고 정함으로써 구체제 신분질서로 회귀를 금지했다. 이 규정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신분질서 타파와 평등 원칙을 공화국의 기본 질서로 천명했다.

1948년 헌법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다음과 같이 사회경제질서를 정초한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경제적 자유는 사회정의의 한계 내에서 보장되고, 사회정의는 경제적 자유의 한계로 작용한다. 다시 말하면 시장에 대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시장이 이 경계를 넘어, 예를 들어 정치와 법의 영역으로 침범하게 되면, 법률과 재판도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하고, 이 타락한 도시에서 정직한 상인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더 이상 경제적 자유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회정의가 시장에 한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자유를 억제하고 시장의 활력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시장을 살리고 경제적 자유를 제대로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두고 신기루라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에 불과하다거나 이른바 장식적 헌법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견해들이 있다. 물론 사회정의는 하나의 이상이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과 유리된 백일몽이 아니다. 이상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의지다. 우리는 이상이 필요하다. 이상이 곧바로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상이 필요하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이렇게 말했다. “최선의 것은 완벽한 것에 의해서만 착상될 수 있다.” 이상이 없으면 우리는 현실이 왜 잘못됐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개혁의 방향을 설정할 수 없다. 그럴 때 우리는 그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추종하든지, 아니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지표로 간주되는 숫자가 이끄는 대로 나아갈 뿐이다.

누구는 또 이렇게 말한다. 1948년 헌법은 1919년 독일 바이마르헌법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고. 실제로 양자의 규정을 비교하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바이마르헌법은 이렇다. “경제질서는 모든 사람에게 인간적 가치의 생활을 보장하는 정의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 각인의 경제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1948년 헌법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주권자가 다양한 텍스트 중에서 사회정의 원칙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텍스트를 준거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선택 자체가 곧 주권자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의한 세상이라고 해서 법전에서 사회정의 원칙을 지워도 되는 것은 아니다. 법전 속에 글자로 찍혀 있는 사회정의는 언젠가 사람들 가슴속에 정의감으로 살아나고, 그리하여 죽은 듯 누워 있던 네 글자를 살아 있는 글자, 활자(活字)로 깨워 일으킨다. 예를 들어 공적인 것(res publica)을 사적인 것으로 사유화하는 유사정치가 판을 치는 동안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헌법 1조는 글자로만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꿈으로 치부당했다. 그러나 법치의 이상을 유감없이 보여 준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 결정은 헌법이 가식이 아니라 엄연히 법이었다는 당연한 진실을 새삼스럽게 상기시켜 준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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