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하청노동자 서씨는 광양제철소 내 위치한 포스넵(니켈 추출설비) 공장에서 고온으로 가열된 소재를 냉각하는 설비의 일부인 환원철저장탱크 배관을 그라인더로 보수하던 중 변을 당했다. 고용노동부는 탱크 안 잔류 수소가스가 그라인드 작업 과정에서 생긴 불꽃과 만나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복되는 포스코 하청노동자 산재
3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여수지청 관계자는 "정확한 사고원인은 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하청노동자 서씨가 탱크 상부에 올라 그라인드 작업 중 발생한 불꽃이 탱크 내 잔여 수소가스와 만나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고현장에는 하청노동자 두 명이 있었지만 탱크 하부에 있던 또 다른 하청노동자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태영ENG 소속 하청노동자 6명이 광양제철소에 상주하며 보수·정비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추정한다”며 “사고를 당한 서씨는 입사한 지 7~8개월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가 진행 중이라 하청노동자를 관리·감독하는 원청 감독자가 있었는지는 말해 주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는 이날 오전 광양제철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고는 원청인 포스코가 탱크에 남은 수소가스를 확인하지도 않고 탱크 배관 보수 작업을 시켜 일어난 중대재해"라고 비판했다. 권오산 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제철소에는 폭발 위험성이 있는 물질이 상당해 보수·정비작업 중 사고위험이 크다"며 "위험작업을 1차 하청업체는 물론 2차 하청업체에까지 도급하니 제대로 된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원청 포스코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사고재발을 막기 어렵다"며 “유해화학물질·폭발성·인화성 물질을 취급하는 라인작업과 설치·정비·보수 과정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업무를 도급승인 대상업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 우려대로 포스코 산재는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집중돼 있다. 노동부의 2018년 중대재해 발생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포스코에서 발생한 산재사망사고는 2건이다. 사고로 5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피해자는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지난해 1월 포항제철소 질소가스 누출 사고로 하청노동자 4명이 질식사한 뒤 이뤄진 노동부 특별근로감독에서는 사법처리 대상에 해당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414건이나 적발됐다.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산재 감축 역부족 확인
서씨가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군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정비하다 목숨을 잃은 고 김용균씨처럼 보수·정비업무를 하는 하청노동자라는 점에서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의 허점을 꼬집는 목소리도 높다. 내년 1월 시행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58조는 “사업주가 도금작업·수은, 납 또는 카드뮴 제련, 주입, 가공 및 가열하는 작업 등 근로자의 안전 및 보건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은 수급인에게 도급을 줄 수 없다”고 규정한다. 서씨 업무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노동부 장관 승인대상 도급업무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노동부가 4월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51조는 "중량비율 1% 이상의 황산·불산·질산·염산을 취급하는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을 도급승인 대상업무로 한정했다. 구의역 김군이나 고 김용균씨는 물론 서씨가 담당한 보수·정비업무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청사업장에서 하청노동자가 작업하다 발생한 사고의 책임을 원청이 지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원청 사업주에 가해지는 처벌강도가 약해 실제로 하청노동자 안전이 보호받기 어렵다"며 "근본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서 규정한 도급금지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원청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 관계자는 "경찰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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