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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사용되는 방법정미경 공인노무사(건설노조 정책부장)
▲ 정미경 공인노무사(건설노조 정책부장)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회는 지난달 1일 240개에 달하는 전문건설업체에 교섭요구를 하면서 2019년 새로운 임금·단체협상의 시작을 알렸다. 건설노조는 초기업 단위 산별노조로서 몇 해간 전국 전문건설업체와 산별교섭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도입 취지를 의심케 하는 것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다.

건설노조는 2017년 첫 산별교섭 당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매 단계를 거치며 온갖 탈법적 교섭지연을 겪은 경험이 있다. 우선 건설업체에서는 교섭요구를 받더라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 의무로 규정된 어떠한 공고도 하지 않는다.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지만 시정 결정을 받기까지 수일이 걸린다. 더구나 노동위 시정 결정은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제재 효과가 없다. 이렇게 첫 번째 교섭지연에 성공한다. 노동위와 고용노동청 관련 모든 기관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교섭요구 사실공고, 교섭요구노조 확정공고를 마치더라도 이를 다시 뒤집을 여지가 남는다. 건설업체의 교섭단위가 되는 ‘하나의 사업장’은 그가 시공하는 ‘전국의 모든 건설현장’이라 할 수 있는데, 업체에서는 임의로 일부 현장에 노조법상 공고를 생략해 버린다. 공고가 되지 않은 현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교섭 참여기회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으니 재공고해야 한다. 다시 두 번째 교섭지연에 성공한다. 이제 노조법상 모든 공고가 이뤄지고 개별교섭에 돌입하는가 싶더니 돌연 건설업체에서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한다. 노동위의 교섭단위 분리 결정이 있기까지 노조법상 최대 30일이 소요된다. 신청인 건설업체는 꼬박 29일의 처리기간을 채우고 심문회의 바로 전날에 모든 신청을 취하한다. 세 번째 교섭지연에 성공하는 순간이다.

올해는 2017년 교섭창구 단일화 양상과는 또 다른 교섭지연 시도가 있었다. 바로 교섭요구 후 전격적인 ‘교섭단위 분리신청’이다. 건설노조가 교섭 요구를 하자 전문건설업체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다음날 90여건의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했다. 1년간 노동위에 접수되는 교섭단위 분리신청이 15건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특정 업종에서 일시에 90건의 신청을 접수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2017년 건설노조의 산별교섭 이후 전국의 모든 철근·콘크리트 전문건설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통일됐기 때문에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가 없다. 게다가 만약 건설업체 신청대로 ‘개별 현장’ 단위로 교섭단위가 분리된다면, 분리된 현장의 공사가 종료되면서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는 사라지고, 새로운 현장이 개설되면 다시 별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이뤄져야 하는 무한반복의 기이한 교섭관행이 탄생하게 된다.

이처럼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성이 전혀 없음에도 건설업체에서 신청을 감행한 이유는 단연 ‘교섭지연’ 효과 때문일 것이다. 노조법 시행령 14조의11에 따르면 사용자는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기 전, 교섭대표노동조합이 결정된 날 이후’에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할 수 있으며, 교섭단위 분리신청이 있는 때에는 노동위 결정이 있기 전(최대 30일)까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진행이 정지된다. 이러한 신청기간 제한을 둔 취지는 교섭단위 분리 결정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영향을 줘 교섭대표노조가 변동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체는 바로 이 규정을 이용해 재차 ‘교섭지연’을 성공시켰다. 건설업체는 지난달 1일 건설노조의 교섭요구를 받았지만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채 다음날인 2일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함으로써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합법적으로 정지시켰다. 위 법령을 문언적으로 해석하면 사용자는 교섭요구를 받더라도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이행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교섭단위 분리신청은 2017년 교섭 당시와 같이 노동위 결정을 받기도 전에 모두 취하됐다. 이로 인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는 2주 이상 지연됐고, 다수 업체가 제각각 상이한 날짜에 공고의무를 이행하면서 산별교섭 틀이 혼란스럽게 됐다. 건설업체에서 진정으로 원한 것은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법령상 제도를 이용해 교섭을 지연시키려는 것이었으니 매우 성공적이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돼 간다. ‘1사 1교섭 원칙’으로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이 제한됨은 말할 것도 없고, 과반수를 차지하는 노조의 단체교섭권 또한 온전히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이 바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다. 복수노조 간 교섭창구를 하나로 하는 것은 노조 간에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는 사용자의 임의적인 의무이행 여부에 모든 노조의 운명이 달려 있다. 사용자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이용한 탈법적 교섭지연을 명확히 부당노동행위로 해석하고 처벌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수백 명의 사용자와 마주 앉아 교섭을 이끌어야 하는 산별노조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얼마나 무용한 것인지 노사정 모두의 대책이 필요하다.

정미경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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