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24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사건 재판을 마치고 대검찰청에서 열린 ‘사내도급 및 파견의 법적 쟁점’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축사와 임종률 성균관대 명예교수 기조강연에 이어 이날 토론회는 본격적으로 발제와 토론의 순서로 진행됐다. 대검찰청이 노동법이론실무학회와 함께 주최하는 학술대회답게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는데, 토론회에서는 1주제에 관해 교수의 발제에 대해 검사가 지정 토론을 했고, 2주제에 관해서는 검사가 발제했다. 나는 2주제인 세이브존 불법파견사건을 중심으로 한 ‘파견법상 규제와 형사책임’이라는 박선민 검사(광주지검) 발제에 대해 지정 토론자로 토론을 하게 됐다. 이날 토론회에 소감이 없을 수가 없다. 발제문을 받아 보고 읽다가 들었던 생각에 관해서 이미 지난 칼럼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토론회장에서 그걸 검사의 말로 들었을 때 들었던 느낌은 또 다른 것이었는데, 아직까지도 생생히 남아 있다.

2. “도급과 파견의 구별은 법률가도 어려운데, 사내도급을 불법파견으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상 바람직하지 않으니 처벌조항을 삭제해서 비범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2주제를 발제한 박선민 검사도,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에 관한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제에 대해 지정토론을 한 박광호 검사도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도급계약을 체결하고서 도급형태로 이뤄지는 사내도급을 도급이 아닌 파견으로 보고 파견법 위반으로 수사해서 처벌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고 노동사건을 담당해 온 검사들은 토로했던 것이다. 살인·강도 등 일반형사범죄와 달리 파견법 위반사건은 그 판단이 쉽지 않다고 이를 수사해서 기소해야 할 검사들은 형사처벌을 폐지해야 한다고 발표하고 토론했던 것이어서 나는 혹시라도 그에 따라 파견법 개정을 추진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노동을 중간착취하는 행위는 범죄로 금해야 하는 것이고, 파견법은 그걸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을 뿐이니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부당하지 않으며, 사용사업주가 지휘·명령을 하고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고 있느냐 하는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의 정의에 따라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고 토론하면서도 대한민국 검사의 비범죄화 주장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법대로, 파견법이 정한 대로 불법파견을 파견법 위반으로 적극적으로 수사해서 처벌할 문제라고, 그동안 수도 없이 고소·고발했음에도 하지 않다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내세운 정권에 따라 수사해 보려다 도급을 파견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비범죄화 운운하는 것은 법을 집행할 검찰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방청석에서는 “근로자성 판단도 어렵지 않느냐” “강간·성폭행 등도 판단이 쉬운 건 아니지 않느냐” 등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근로자인지 판단이 어렵다고 해서 사용자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걸 폐지하자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쉽지 않다고 해서 강간죄·성폭행죄 폐지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파견법 위반에서도 마찬가지로 봐야 하지 않느냐고 발제한 검사에게 묻는 질의였다.

3. 이날 토론회의 총괄사회도 김정옥 대검찰청 공안부 검사가 맡은 것을 비롯해서 발제자와 토론자, 그리고 참석자들도 대부분 공안부 검사들이었다. 검찰에서 노동사건은 공안부가 담당해 왔다. 얼마 전 ‘공안부’라는 간판을 ‘공공수사부’로 바꾸기로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뉴스를 검색해서 좀 읽어 보니 관련 법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대검찰청 공안부는 공공수사부로 간판을 바꾸고, 대검 공안1과(간첩)는 공안수사지원과로, 공안2과(선거)는 선거수사지원과로, 공안3과(집회·시위·노동)는 노동수사지원과로 개칭되며, 서울중앙지검 공안1~2부와 공공형사수사부는 공공수사1∼3부로, 일선 검찰청 공안부는 공공수사부로 바뀐다. 그런데 이날 토론회에서 받은 검사의 명함에는 대검찰청 공안3과(노동·산재 수사지원)으로 표기돼 있는 걸 보니 아직까지는 법령 개정 등의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해 그대로 공안부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노조가 불법 쟁의나 집회·시위를 할 때면 공안부 검사가 수사를 지휘해서 기소한다. 임금체불·산업안전 등 사용자를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으로 고소·고발할 때도 공안부 검사가 한다. 노동사건은 노사를 막론하고 공안검사가 맡아 수사해서 기소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나는 한 노동자와 상담하다가 공안검사가 자신을 노동검사라고 말하더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었다. 서슬이 퍼렇던 공안정국을 주도했던 ‘공안’검사가 노동검사라고 했다니 세상이 좀 변하긴 변한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공안부든 공안수사부든, 공안검사든 노동검사든 수사권을 행사하는 검사로서 적극적으로 노동법을 집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노동법을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법으로 알고서 집행하지 않는 한 노동검사라고 명함에 쓰고 다녀도 의미가 없다. 검찰이 2015년부터 3년간 접수한 ‘공안사건’ 중 노동사건이 88.4%(27만3천911건 중 24만2천11건)이고 나머지 출입국관리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대공사건 등은 11.6%(2만8천634건)에 불과했다. 공안사건에서 노동사건을 빼면 공안부의 존립 자체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까지도 이 나라에서 노동사건을 담당해 온 공안검사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인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법 집행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고작해야 근로감독관을 지휘해서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을 뿐이다.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로 보자면 노동사건은 근로감독관에게 수사권을 행사하도록 해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검사가 해 왔던 일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법의 집행, 수사권 행사에서 별 볼 일이 없었다. 불법 쟁의와 집회·시위 등 일반 사법경찰관의 업무로 분장돼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공안검사는 자신의 소임에 적극적이었다고 나는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는 노동자의 자유에 대한 규제법을 집행하는 것이었으니 내가 노동자의 자유를 위하는 검사로 공안검사를 알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에서 공안검사는 이랬다. 감히 자신을 노동검사라고 칭한다는 게 낯설 정도로 이랬다. 그러니 공공수사부·노동수사지원과로 간판을 바꿔 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4. 그래서 이 나라에서 오늘, 단순히 간판만 바꿔 다는 게 아니라며 노동검사로 새로이 태어날 각오로 말해야 했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법, 노동법을 집행하겠다는 의지로 발제하고 토론해야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검사는 파견법 위반으로 사용자를 형사처벌까지 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비범죄화를 말하고 있다. 물론 입법론으로 이를 말할 자유는 검사에게도 있다. 하지만 사내도급에 관해 파견법 위반으로 수사해서 처벌해야 할 검사에 대한 피해자 노동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고, 오히려 실망을 안겼다고 말하는 것은 내 자유인 것이다. 파견법이 제정돼 시행된 지 20년이다. 사내도급 형태로 불법파견이 수많은 사업장에서 행해져 왔다. 이를 적극적으로 인지해서 수사하지 않았더라도 그저 피해자 노동자들의 고소나 진정, 노조 등 노동단체의 고발에 따라 제대로 수사해서 기소했더라면 많은 사업장에서 불법파견의 사내도급은 얼마든지 근절될 수 있었다. 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게 2007년 6월인데, 그때부터라도 검찰이 현대차 사용자를 수사해서 기소했더라면 현대차와 그 협력업체들에서 사내도급 형태의 파견근로는 벌써 10년 전에 종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디 현대차뿐이겠는가. 그와 같은 방식의 자동차회사나 제철소·전자회사 등에서도, 나아가 사내도급 형태로 노동자를 중간착취하는 불법파견은 범죄라는 인식을 이 나라의 모든 사용자들에게 심어 줘 오늘과 같이 사내하청이 일반화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오늘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근로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것은 파견법을 집행하는 검사가 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근로가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한 것은 그것이 본래 비범죄화해야 할 파견근로여서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 검사가 그것을 범죄라는 인식을 갖도록 법을 집행하지 않아서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노동검사를 위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법을 적극적으로 집행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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