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최근 근로자지위보전 가처분에서 승소했다. 즉시 복직 및 임금 지급이 그 내용이다. 이 글에서는 위 소송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이 사건이 교훈으로 남긴, 비정규직과 노조활동의 상관관계에 대해 쓰고자 한다.

MBC는 2016년과 2017년 공중파 방송 최초로 아나운서를 계약직 비정규직으로 선발했다. 증거들에 의하면 그 목적은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를테면 채용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회의록에 “아나운서들이 파업이 있으면 일종의 선무부대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는 발언 등이다. 고용이 불안정해서 사용자에게 강하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계약직 신분으로 아나운서를 뽑으면 노조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MBC 경영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초반 일정 기간 동안 그렇게 ‘군기’를 잡아서 노조활동 위험을 없애 놓고 결국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취지의 계획이었다. 아나운서는 상시·계속 사용 필요성이 너무 커서 계약직은 애당초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촛불 탄핵정국으로 새로운 개혁적 경영진이 취임한 이후 이들은 해고됐다. 해고의 부당성이 법원에서 판가름 난 마당인데 이제 와서 새 경영진을 감정적으로 탓할 생각은 없다. 새 경영진도 나름의 정무적인 판단을 했을 것이다. 16·17사번 아나운서들이 2017년 파업 당시 방송을 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껄끄러웠던 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부당하게 해고해서는 안 된다. 또한 16·17사번 아나운서들이 왜 적극적으로 파업에 동참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을 텐데도 이를 모른 체하고 차가운 진영논리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진보도 아닐뿐더러 잔인한 몰이해에 가까울 수 있다.

16·17사번 아나운서 채용 당시 세상에 대한 희망과 설렘으로만 가득 찬 나이의 1천700여명의 청년노동자가 지원서를 냈다. 정규직 공채와 같은 공고·경쟁률·절차였고 시험내용도 같았다. 이는 가처분 법원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다. 쉽게 선발된 자들이 결코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16·17사번 아나운서들은 파업을 이유로 채용된 대체인력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이때는 파업이 있기 전이었고 파업을 이유로 한 채용은 당연히 아니었다. 사측 내심의 의사는 차치하고 말이다. 계약직의 불안정한 신분을 이용하려는 사측의 의도를 알았거나 그 의도에 복무하고자 한 청년노동자가 몇이나 됐을까.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회 초년생인 이들에게 너무 과중한 진보적·공익적 사명 또는 지사적 결단을 '소급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약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잔인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정규직보다 심한 생존의 공포라는 실존과 언론의 자유라는 공익 앞에서 번민했다. 이들은 파업 중에 때로 정규직 아나운서 선배에게 "파업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고 선배들은 "너희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응답했다. 언론탄압 경영진과 비정규직 문제가 만들어 낸 한편의 비극이다.

절대다수 사람은 철인이 아니다. 구조의 모순을 제 한 몸 바쳐 돌파할 수 있는 소수의 지사를 존경하오나, 차마 그러하지 못한 필부들을 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을 때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이들을 곱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비정규직제도하에서 그 비정규 노동자들을 미워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런 노노갈등은 사용자가 의도하는 것이며 악덕 사용자는 이를 흐뭇하게 관람한다.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로 엄히 제한하고, 이 사건 아나운서 직역과 같이 상시·계속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나는 지금과 같이 무분별하게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악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MBC 파업사태와 같은 일이 똑같이 벌어지더라도, 정규직에 비해 당장 해고될 극도의 불안정 상태에 있는 비정규직들에게 파업에 동참하라는 말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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