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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투쟁은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한국 노동운동에서 임금투쟁은 신성불가침이었다. 임금을 올리는 투쟁은 처지·조건을 불문하고 무조건 정당한 것이었다. 인상액을 낮추거나 동결하면 어용 취급을 받았다. 임금투쟁이 계급의식을 만들고 조직력·투쟁력을 높일 것이라 믿었다. 현실에서 실현되던 때가 있었다. 1987년부터 97년까지 10년 남짓이었다. 임금투쟁은 노동자 학교였다. 낙수효과도 있었다. 투쟁에 앞장선 노조의 임금이 오르면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의 임금도 함께 올랐다. 임금투쟁에 대한 국민 지지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서 임금투쟁 자체에 대한 신성불가침을 멈춰야 했다. 어떤 처지의 임금투쟁이고 결과가 무엇이냐를 따져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임금투쟁은 노동계급의 분단 고착화에 일조했고, 노동운동 주력 대오를 체제에 순응하도록 만들었다. 임금투쟁에서 성과를 낼수록 투쟁력이 약화하는 역설이 빚어졌다. 무려 20년간이나 계속되며 심화했는데, 노동운동은 이를 분석하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2주 전에 보고서 하나가 나왔다. 읽고 나서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이런 종류의 보고서가 10년 전에만 나왔어도….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의 보고서다. 제목은 ‘저임금·임금격차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접근방향’이다.

“고용증대를 위해 상위계층의 임금수준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극단적 임금평균상태를 상상해 봐도 알 수 있다. 2017년 국민총소득을 취업자 전체에게 똑같이 분배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업 이윤은 없다.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고정자본 형성에 지출된 소득)을 제외하고 계산해 보면 전일제 취업자 기준 1인당 소득은 약 5천200만원이다. 임금노동자 소득을 이렇게 평준화하면 전체 노동자 연평균 임금은 1천600만원(46%) 인상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통계청의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으로 보면 임금소득 상위 10% 노동자의 경우 평균 4천700만원이 삭감된다. 상위 20% 노동자는 평균 700만원 삭감된다. 기업 이윤이 없어도 이 정도다. 임금격차 완화로 가는 길은 상위 계층 노동자의 임금조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국민총소득을 전체 취업자 임금으로 평균하는 작업은 산수만 조금 알아도 가능한데, 한국 노동운동은 그 긴 시간 왜 이런 간단한 작업을 놓쳤을까. 10년 전쯤에 이런 보고서가 나왔다면, 노동운동은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구상을 더 빨리 했을 것이고 지금쯤 성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끝으로 한지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보고서에서 중점으로 얘기한 내용은 최저임금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보고서 부제가 ‘최저임금·소득주도성장의 한계와 대안’이다. 관련해서 한 대목 소개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결단’으로 한국경제 40~50년의 저임금·임금격차 역사를 뒤집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미망(迷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의 여부를 떠나 노동운동 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 놀랍지 않은가. 보고서를 쓰면서 겪었을 마음의 파동이 느껴진다.

한지원이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쓴 글로 보고서 소개를 마무리한다. 보고서는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pssp.org)에서 구할 수 있다. 읽어 본 뒤에 고민하고 논쟁하면 어떨까 싶다.

“어려운 보고서를 하나 냈다. 저임금 노동자와 함께 노동운동하는 것이 본업이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저임금 인상에 집중하는 것은 노동운동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해 미루고 미룬 보고서를 발간하게 됐다. 보고서는 최저임금 인상은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장의 반격을 이길 수 없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는 노동시장의 문제 이전에 역사적인 자본축적 과정에서 발생한 자본 간 격차가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임금격차와 자본집약도 차이는 산업별로 봐도, 기업규모별로 봐도 역사적으로 비례했다. 자본격차가 이렇게 벌어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노동운동이었다. 평등주의적 임금지향으로 자본이 격차를 스스로 줄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지 못해서다. 임금격차 완화는 사실 시장이나 기업의 역할이 아니라 노동자운동의 역할이다. 어렵더라도 노동조합 스스로의 역할로 임금격차를 줄여야 한다.”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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