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정남 매일노동뉴스 기자가 지난 5월14일 새벽 쿠팡플렉스 새벽배송을 하고 있다. 경기도 광명의 한 아파트단지다. 보안문을 열기 위해 단지 관리실을 호출하고 있다. 익숙한 일인 듯, 문이 열렸다.<정기훈 기자>

기획회의를 준비하는 내내 3주간 배달대행기사로 일한 경험을 담은 옆 동네 신문기사가 머리를 맴돌았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한 달간 요양원에서 일한 기자도 있었다. 플랫폼 노동과 돌봄이라는 사회 과제를 노동 당사자 입장에서 풀어낸 생생한 글이 나왔고, 또 나올 것이다. 무엇이 남았을까. 카카오 카풀 기사는 신청해 뒀지만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고 있다. 타다 기사는 한번 해 보고 싶었지만 후기가 좋지 않았다. 사고로 차량에 손상이 발생했을 때 면책금을 내야 한다고 토로하는 글이 많았다. 50만원을 내야 한단다. 혹시라도 취재를 하다 사고가 나면 우리 회사가 면책금을 부담해 줄까? 안 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포기했다. 이륜자동차 배달대행기사도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한때 좀 탔다. 발톱 빠지고, 얼굴을 아스팔트에 갈았던 경험이 떠올랐다. 19개월 된 아기 아빠로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쿠팡플렉스밖에 남질 않았다. 기획회의에서 쿠팡플렉스를 하면 플랫폼 노동 실태를 보여 줄 수 있다고 강변했다. 1주일도 빼 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취재를 하기로 하고 회의를 끝냈다. 결과적으로 두 번밖에 일하지 못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라고 광고했는데
일할 기회도 배송단가도 할당물량도 쿠팡이 정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쿠팡플렉스에 지원했다. 안내를 받아 배송지역별로 만들어진 대화방에 들어가면 일할 준비는 끝난다. 배달은 하루 3회전으로 진행된다. 낮 시간대는 '주간배송',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는 '심야배송', 새벽 3시부터 오전 7시까지는 '새벽배송'으로 구분한다.

기자는 이달 9일 오전 "5월10일 주간배송을 하겠다"고 신청했다. 배송 희망 시간대는 언제인지, 희망 동네는 어디인지, 희망하는 배송물량이 몇 개인지를 설문지처럼 체크해서 온라인으로 제출했다. 이를 서베이 신청이라고 한다. 주거지 근처 동네와 물량 30~50개를 선택했다.

신청한다고 무조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첨이 돼야 한다. 어떤 근거로 당첨자를 뽑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기자가 들어간 단체대화방 참가인원은 1천700명이 넘었다. 지켜본 결과 주간배송은 매일 30~50명, 심야·새벽배송은 각각 20명 안팎이 배치된다. 적지 않은 이들이 고정적으로 하고 있다.

신청 당일 오후 6시께 "주간 배송 확정 안내"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시간대는 5월10일 주간배송, 배송지역은 아무개 아파트단지, 상품수령장소는 쿠팡물류창고다. 창고는 '캠프'라고 부른다. 오전 10시30분까지 창고로 오라는 설명과 함께 "1개당 배송단가 800원"이라고 알려 왔다. 배송단가는 매일 바뀌는데, 최근 들어 하락하는 추세다. 단가가 변동하는 이유는 모른다. 쿠팡이 마음대로 정하기 때문이다. 물량이 얼마인지도 일하기 직전까지 알려 주지 않는다. 예상수익(임금)을 모른 채 일하러 가야 한다는 얘기다. 물량을 미리 알면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 그럴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쿠팡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고 돈 많이 벌어 가라"며 쿠팡플렉스를 모집한다. 물량을 모르니 몇 시간 일하는지도 모른다. 당첨이 돼야 하니까 일하고 싶을 때마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쿠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일하기 전부터 내 안의 투덜이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 자가용 뒷자석과 트렁크에 배송물품을 가득 싣는다. 순서대로 쌓아 놔야 수월하다.<정기훈 기자>

쿠팡 관리자 얼굴 못 봤는데 일은 시작되고

쿠팡플렉스는 자신의 자동차를 이용해 물건을 배송해야 한다. 이튿날 아침 자동차 내부를 정리했다. 아기가 타는 차량이라 짐이 많다. 뒷좌석에 고정돼 있는 아기의자를 떼어 내고 아기 장난감을 치웠다. 트렁크에 있던 각종 공구를 끄집어냈다. 대형마트 이벤트에서 받은 손수레는 조수석에 뒀다. 발전소 현장취재 때 사용한 고무코팅 장갑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버리기 아까워 들고 왔는데 택배 배송에 사용할 줄은 몰랐다.

며칠 전 샤워를 하다 등과 목에 담이 결렸다. 씻다가 담에 결리다니…. 40대의 나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후기를 보니 주간배송에는 생수나 쌀 같은 무거운 물건이 많다던데. 일을 시작하기 전에 파스부터 붙였다. 지난밤 봤던 동영상 후기 내용을 곱씹으며 35분을 달려 쿠팡 창고에 도착했다.

오라는 시간에 맞춰 도착했건만 관리자가 보이지 않는다. 출석체크를 해야 한다는 후기를 읽었는데, 상황별로 달라지는 걸까. 창고 안에는 택배물량이 한가득이다. 쿠팡플렉스들은 벌써 개인 차량에 택배물량을 싣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문자메시지에 적힌 할당지역번호를 따라 택배가 쌓인 곳을 찾았다.

20대로 보이는 청년에게 "초보라서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스마트폰에 설치한 쿠팡플렉스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보여 달라고 하더니 자세히 설명해 준다. 이날 배송지역은 10개 아파트동이 있는 단지다. 이 중 3개 동을 배정받았다. 가득 쌓인 택배 중 내가 배달해야 할 아파트 3개 동 물건만 따로 빼내야 했다. 택배상자·봉투에 부착된 송장을 보며 내 물건을 찾았다. 같은 아파트를 맡은 다른 한 분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택배를 수레에 실어 주차한 자동차 앞으로 끌고 갔다. 한숨 돌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여성이 3분의 1은 돼 보였다. 이제부터 본업인 취재를 해야 한다. 같은 아파트로 가는 분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차에 물건을 빼곡히 쌓았다. 7개 동을 할당받았으니 남보다 두 배 이상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다. '저 많은 것들이 다 들어가는구나' 감탄하고 있을 찰나 바로 출발해 버렸다.

옆에서 택배를 싣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11인승 승합차인데도 물건을 다 싣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공지에 따르면 주간배송 최대 물량은 200개다.

"물건이 많으시네요?" "큰 박스가 많아서…."

말을 끝내지 않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귀찮게 하지 마라는 뜻이리라.

"잠시 뒤 주차한 차량은 빼 줘야 합니다." 누군가 크게 외쳤다. 물건을 싣지도 않았는데 차를 빼라니. 취재고 뭐고 일부터 해야 했다.

물건을 분류했다고 창고에서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배송장 바코드를 일일이 체크한 뒤 차에 실어야 한다. 내가 배송할 물건이 맞는지, 빠뜨린 물건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배송지 주소를 확인하면서 배달 동선도 짜야 한다. 순서를 정해 적재해야 배송할 때 편리하다. 바코드를 체크하면 오늘 배달할 정확한 물량을 확인할 수 있다. 25개다. 도착한 지 40여분 만에 물건을 싣고 창고를 나섰다. 잠시 뒤 전화가 걸려왔다.

"쿠팡인데요. 오늘 안 오시나요?"

"지금 택배 싣고 배달하러 가는 중입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무실로 와서 출석체크를 하셔야 하는데요. 뭐 괜찮습니다. 처음이라 물건은 25개만 드린 겁니다. 안전운전 하십시오."

출석체크를 하고 초보자에게는 간단한 교육을 한다던 후기 내용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교육 없이 실전에 나와 버렸다. 회사 관리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일을 시작했다.
 

▲ 주택가 골목에서 배송지 찾는 게 쉽지 않다. 초보자에겐 상대적으로 쉬운 아파트단지를 많이 배정한다고 한다.<정기훈 기자>

아파트단지·오피스텔 배송시키는 이유 있었네

쿠팡플렉스에게 할당되는 배송지역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아파트단지이거나 오피스텔이다. 번지나 도로명주소지에 배송하는 것보다 쉽다.

주차를 하고 해당 동에 배달할 택배를 밖으로 꺼냈다. 아파트는 계단이 많았다. 1층도 계단 5~6개를 올라가야 했다. 엘리베이터는 중간층에 선다. 8층과 10층에 배달을 한다면 그사이 어디쯤 내려야 한다. 수레는 무용지물이다. 물건을 들고 날랐다. 경비 아저씨가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쿠팡에서 왔다고 했더니 "거기는 (기사가) 맨날 바뀐다"고 푸념을 했다.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하면 고객이 원하는 배송방법을 알 수 있다. 문 앞에 두거나, 직접 전달해 달라거나, 경비실에 맡겨 달라는 등 희망사항이 기재돼 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택배를 촬영해 등록하면 배송이 완료된다. 그러면 고객에게 사진과 함께 '상품을 입구 옆에 보관했습니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간다.

직접 전달해 달라고 해서 벨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는 곳이 제법 있었다. 한동안 문 앞을 서성거리다 문 옆에 두고 돌아섰다. 택배 5개를 시킨 고객이 있었다. 한 방에 5건을 처리할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경비실에 두고 가라는 경우도 3건이다. 정말 감사했다. 아파트에서 배송을 시작한 지 1시간여 만에 25건 배송을 완료했다. 복도식 아파트인 데다 배송량이 적어 생각보다 빨리 끝냈다. 운이 좋게도 무거운 짐은 별로 없었다. 배송을 끝내면 단체대화방에 완료사실을 댓글로 보고해야 한다. 같은 아파트단지 7개 동을 맡았던 여성은 이미 완료보고를 했다. 오전 9시50분 집을 나서 오후 1시께 집으로 돌아왔다.

일반 택배회사 노동자들이 하루에 처리하는 택배건수는 보통 250건이다. 기자와 같은 속도로 한다면 순수 배달에만 10시간이 걸리게 된다. 심지어 그들은 골목골목을 누빈다. 고된 노동이다.

▲ 새벽 3시께 쿠팡 구로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받아 배송 순서에 따라 정렬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조명이자 바코드 단말기로 활용한다. 자가용을 이용해 배송한다. 아이 태우던 카시트는 빼 뒀다.<정기훈 기자>

새벽배송은 배송 직전까지 일할 장소·물량 몰라

며칠이 지난 13일, 이번에는 14일 새벽배송을 신청했다. 주간배송과 달리 희망물량도 희망지역도 신청할 수 없고 참석 희망 여부만 기재하게 돼 있다. 쿠팡은 밤 12시 전에 주문한 상품을 다음날 새벽까지 배달하는 서비스 새벽배송을 한다.

신청 당일 오후 4시 배송 확정 안내 문자메시지가 왔다. 쿠팡 창고에 14일 새벽 2시30분까지 오라고 했다. 개당 배송단가는 1천100원. 오후 4시 이후에도 새벽배송 백업 희망자 신청을 받는다는 문자메시지가 계속 날아왔다. 새벽배송 주문이 많을 경우를 대비해 예비 지원자를 모집해 두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 어느 정도로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방법이 쿠팡플렉스인 셈이다. 주문량이 적으면 일을 안 시키면 되고, 많으면 희망자들까지 동원하면 된다. 이보다 좋은 고용유연화가 있을까.

한 시간여 눈을 붙이고 14일 새벽 1시50분 집을 나섰다. 배송지역은 확정되지 않았다. 2시30분 창고에 도착해 애플리케이션을 봤더니 배송지역 할당코드가 부여돼 있다. 코드만 봐서는 어느 지역인지 알기 힘들었다.

주차는 창고 바깥에 한다. 창고 안에서는 며칠 전 낮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주간에는 지역별로 택배가 분류돼 있었다. 새벽배송은 쿠팡플렉스들이 직접 분류작업을 해야 한다. 지게차가 택배를 풀어 놓으면 배송장에 적힌 지역코드별로 분류해 창고 한편에 쌓아 둔다. 자기가 배송할 물건이 아닌데도 분류를 해야 한다.

한때 택배업계에서 '공짜노동 분류작업'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배송을 하는 택배노동자에게 분류작업까지 시키는 것은 공짜노동이라는 비판이다. 자신에게 할당된 택배를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논란이 됐는데, 쿠팡플렉스는 다른 사람이 배송하는 택배까지 분류한다. 이걸 협업이라고 해야 할지, 사람들이 착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쿠팡이 너무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류작업은 30분 이상 걸렸다. 할당된 코드번호가 적힌 택배를 찾아 자동차로 가져왔다. 스마트폰 손전등을 이용해 바코드를 체크하고 물건을 차에 실었다. 체크가 끝나야 몇 개가 할당됐는지와 배송지역을 알 수 있다. 쿠팡이 노동자 작업량과 노동시간, 일할 장소까지 통제하는 것이다. 오늘은 21개다. 쿠팡 관리자는 "초보라서 적게 배정했다"고 말했다. 새벽배송은 최대 할당량이 40개다.

배송지는 도로명주소와 오피스텔·빌라·아파트단지가 섞여 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빌라 배송이 특히 어려웠다. 주차난으로 차를 댈 곳이 없어 길 위에 세워 두고 택배를 들고 달렸다. 배송하기도 전에 차를 치워 달라는 "빵빵" 소리가 들렸다. 택배를 든 채 뛰어와 차를 옮겼다.

이번에는 아파트 대단지다. 새벽배송을 어렵게 하는 것은 어둠이다. 외벽에 쓰인 동 호수가 보이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야 하는데 위치 찾는 속도가 느렸다. 최신장비를 갖추지 못한 내 탓일 수 있겠다. 아파트 입구마다 경비실을 호출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새벽 5시30분 21개 배달을 끝냈다. 단체대화방에 완료보고를 했더니 쿠팡 담당자가 "잔여물량 백업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하기 싫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6시. 아기가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화장실로 달려갔다.
 

▲ 배송의 시작과 끝은 스마트폰이다. 배송지 현관 앞에 신선식품이 담긴 상자를 내려두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전송하면 배송 완료다.<정기훈 기자>

"싸게 부리고 언제든 충원 가능하고, 쿠팡은 좋겠다"
두 차례 일하고 3만원 벌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쿠팡플렉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쿠팡맨들의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에 맞추기 위해 알바 형태의 쿠팡플렉스를 투입하고 있다. 쿠팽맨들은 어려운 지역을 배송하고 아파트단지 등 배송이 비교적 쉬운 곳은 쿠팡플렉스를 통해 싸게 부린다. 일이 있으면 채용하고, 없으면 채용하지 않으면 되니까 쿠팡은 좋겠다."

두 번 배송하고 얼마 벌었을까. 주간배송으로 2만원(800원×25개), 새벽배송으로 2만3천100원(1천100원×21개) 실적을 올렸다. 소득세와 지방세를 합해 3.3%(1천310원)를 빼면 4만1천690원이다. 자동차로 50킬로미터를 달렸으니 기름값이 대략 8천500원이다. 새벽배송을 하고 돌아와 배고파서 두유(500원)를 마셨다. 그런데 첫 배송에서 고무코팅 장갑을 잃어버렸다. 비용 1만원을 빼면 순수익이 3만1천690원이다. 파스값과 자동차 감가상각은 제외했다.

노동시간은 분류작업부터 배송완료까지 주간배송 2시간·새벽배송 3시간 등 5시간 일했다. 시간당 6천338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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