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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에서 총을 들었던 ‘김군’은 누구인가다큐멘터리 <김군>
▲ 황진미 영화평론가

5·18 기념식이 열리는 광주 번화가에 시위대가 나타났다. 이들은 ‘부산 갈매기’를 부르며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서울에서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5·18 진압군을 참배한 뒤 도심으로 향하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1. ‘제1 광수’ 로 지목된 사진 속 인물을 찾아 나서다

“5·18은 김일성과 김대중이 야합해, 북한군 600명을 침투해 벌인 게릴라전이었으며, 민주화운동은 없었다.” 이것이 2002년부터 지만원이 주장하는 요지다. 2015년부터 그는 5·18 민주화운동 기록사진에 찍힌 시민군의 얼굴이 북한 사진 속 얼굴과 동일인이라는 주장을 덧붙였다. 광주에 침투했다는 북한군을 그는 ‘광수’라 부른다. 2015년 ‘일베’ 사이트의 ‘노숙자담요’라는 사람에 의해, 북한의 농업상이었던 김창식과 동일인으로 지목된 사진 속 청년이 ‘제1 광수’다. 이후 ‘광수들’은 561명으로 늘어났다. 북한군 투입설은 황당하지만, 극우 사이트를 중심으로 세를 늘려 갔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이에 가세했고, 급기야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통과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5·18진상규명법)에 북한군 개입 여부를 규명하라는 조항을 삽입했다. 사실 이런 프레임은 새롭지 않다. 5·18 당시 신군부 정권은 구속자들을 고문하며, 김일성의 사주나 김대중의 내란음모와 엮을 거짓 자백을 강요했다.

광주와 무관한 간첩 수사도 광주와 엮기 위해 조작했다. 1988년 열린 광주청문회를 시작으로 진상규명이 시작됐지만, 발포명령자·헬기 사격·집단 암매장 등은 규명되지 못했다. 그래도 90년에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5·18보상법)이 제정됐고, 95년에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민주화운동법)이 제정됐으며, 97년에는 5·18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는 등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는 97년 전두환의 내란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서도 확인됐으며, 5·18 민주화운동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되는 등 국내외적인 평가가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종북’ 타령을 하는 시절을 거치면서 난데없는 ‘북한군 개입설’이 힘을 얻었다.

북한군 개입설을 일축시키기 위해서는 북한군으로 지목된 이들이 실제로 누군지를 증명하면 될 터다.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의 촬영을 맡기도 했던 30대 젊은 감독 강상우는 다큐멘터리 <김군>을 통해 2015년 ‘제1 광수’를 찾아 나선다. 4년의 제작기간 동안 38년의 세월을 헤집는 지난한 탐문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군 ‘김군’에 관한 뜻밖의 진실이 밝혀진다.

2. 넝마주이 ‘김군’

페퍼포그 차를 타고 기관총을 든 ‘제1 광수’는 누구일까. 그는 269명의 사망자와 3천139명의 부상자, 166명의 행방불명자 명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지만원을 고소하기 위해 5·18 유족모임이 ‘5·18 당시 사진 속 광주시민 찾기’에 나서자, 다행히 ‘제44 광수’ ‘제36 광수’ 등으로 지목당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감독은 이들에게 사진 속 ‘제1 광수’를 아는지 물었다. 하지만 당시 시민군들은 통성명을 하지 않았기에 서로를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감독은 당시 사진을 찍은 이창성 기자를 찾아가 셔터를 누른 순간에 대해 물었다. 시민군들이 사진에 찍히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는 그의 말은 당시 시민군들의 삼엄했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 준다.

무수한 탐문 끝에 ‘제1 광수’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났다. 당시 임신 7개월의 몸으로 시민군의 차에 주먹밥을 올려 주던 주옥은 그가 아버지 술도가에 자주 오던 ‘김군’임을 알아봤다고 말한다. 주옥의 아버지는 ‘김군’이 무등복지원 출신 고아로, 천변에 천막을 치고 살던 넝마주이 중 하나였으며, 계엄군이 물러난 뒤 넝마주이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말을 들려줬다.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연고자가 없는 고아였기에, 실종자 명단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오월 광주에서 넝마주이·노숙인 등이 투쟁의 주역으로 나섰으며 마지막까지 무기반납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당시 보도나 89년 청문회 등에서도 나왔던 내용이다. 지만원도 ‘품팔이들의 부화뇌동’ 등으로 헐뜯기 위해 자주 언급한다. 이런 악의적인 폄훼를 방어하느라 그동안 민주시민들은 언급을 회피해 왔지만, 이는 민중저항사의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하지 않을까. 4·19 때도 도시하층민들이 더욱 급진적이었고 희생자도 많았다. 87년 6월 항쟁 때도 명동성당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은 철거민 등 도시빈민들이었다. 광우병 촛불 때도 새벽까지 시위대를 지킨 사람들은 번듯한 소속이나 지위가 없었던 이들이었다. 이처럼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주체로 나서 “우리도 애국을 하겠다”며 끝까지 버틴 기층민들의 저항을 바로 보지 못하고 ‘건전한 시민’과 분리한 채 도외시한 것이 ‘북한군’ 운운하는 괴담에 토양을 제공한 것은 아닐까.

3. 송암동에서 사살된 시민군 ‘김아무개’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진 속 인물이 틀림없는 이강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막상 이강갑을 만나 보니 제시된 사진 중 한 장만 본인이라고 한다. 현장에서 찍힌 여러 장의 사진에서 동일인처럼 보였던 얼굴도 동일인이 아니라니, 30년 후 북한 사진과의 대조를 통해 ‘561명의 광수들’을 찾아냈다는 주장은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감독은 이강갑을 경유해 함께 10번 트럭에 탔던 최영철과 최진수를 만난다. 최진수는 89년 광주청문회에 나가 송암동 민간인 학살을 증언한 사람이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동일한 진술을 들려준다. 최진수 일행은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민가로 숨었다가 체포됐는데, 계엄군은 집단구타를 하다 ‘김아무개’를 쏘아 죽였다. 최진수는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안은 채 살고 있으며, 지금도 ‘김아무개’의 시신을 수거해 간 11공수단에게 시신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최진수·최영철·이강갑이 38년 만에 소극장에서 만나 스크린을 통해 당시 사진을 보는 장면은 기이한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김아무개’와 같은 익명의 시민군들이 얼마나 많았으며, 연고도 기록도 없이 사라진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영화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중요한 진실을 알려 준다. 항쟁의 주역이었던 시민군을 중심에 두고, 그들이 누구이며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1인칭 관점에서 들려준다. 또한 그들이 전쟁과도 같던 살육의 현장을 겪고, 체포와 고문을 거치면서 어떤 트라우마와 죄의식을 안게 됐으며,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도 정직하게 비춘다.

이들에게 오월 광주는 아직 진행 중이다. 역사적인 진실을 둘러싼 투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두환이 헬기를 타고 광주를 방문한 뒤 사살명령이 내려졌으며, 헬기로 시민군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했다는 사실도 이제야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김군>은 이러한 ‘기억전쟁’의 최전선을 비춘다. 5월23일 개봉 후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황진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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