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우리 주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자주 봤던 노조 조합원은? 그것도 공무원 신분인 조합원은? 시민들에게 쉬운 질문은 아닐 것이다. 정답은 집배업무를 담당하는 우정노조 조합원들이다. 1958년 노동조합이 출범하고 무려 60여년을 쉼 없이 맥을 이어 오고 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웠듯 1884년 갑신정변이 났던 우정국 개국 축하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전신·전화와 함께 우정노동의 역사는 무려 140여년에 이른다. 간단치 않은 역사다. 그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넘어 ‘초연결사회’라고까지 부르는 오늘에도 우리 곁을 차지하는 우정노동자 자리는 작지 않다는 데 다들 동의하리라.

그런데 최근 들어 부쩍 우정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은 “인력증원·주 5일제 노사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6월에는 전면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짧지 않은 기간, 우정노조와 조합원들을 지켜본 필자로서는 ‘참을 만큼 참았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뭘 했나’ 하고 묻게 된다.

“우정사업본부 집배원의 장시간 근로를 줄이고, 양질의 대국민서비스 제공을 위해 각 지방청별, 지역 단위별 집배인력 및 업무역량 등의 실태를 세밀하게 파악해 집배인력 증원 문제를 모색하고, 비정규직인 상시계약집배원의 정규직 전환, 근로기준법 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업종에서의 우편업 삭제 등의 조치를 단행한다.” 위 합의는 2017년 5월1일 한국노총과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체결한 정책협약 12대 과제 중 우정노조가 한 정책요구 사항(8항)이다. 이 중 지난해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것 이외에 나머지 사항 이행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핵심은 역시 집배인력 증원에 있다. 우정노조에 따르면 2008년부터 무려 191명의 집배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교통사고가 25건, 뇌심혈관계질환이 29건, 암이 55건이란다. 노동현장 어느 사업장에서 이 정도의 산재가 발생한단 말인가. 2018년 집배노동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천403시간이다. 우리나라 노동자 평균인 1천978시간보다 연간 425시간이 많다. 시간을 쪼개어 식사하는 모습,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쌀쌀한 날씨인데도 땀이 흥건한 채 뛰어다니는 모습, 명절이면 아파트 현관에 수북이 쌓인 소포더미만 보더라도 우정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은 노동시간이 길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우정노조는 줄곧 집배인력 증원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와 함께 진행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에서 한 발표에 따르면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에 맞추려면 최소 정규직 집배공무원 2천명 증원이 필요하다. 다만 급작스런 증원이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올해 1분기 안에 1천명이라도 증원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사용자인 우정사업본부는 ‘올해도 1천960억원 적자가 발생한다’며 합의 이행을 미루고 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기획추진단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2천명 증원을 권고했을까. 절대 아니다. 우정사업은 그 자체로 공적인 사무다. 그래서 집배원들의 신분은 공무원이다. ‘적자’ 운운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여타 공무원의 업무 결과를 평가하면서 ‘적자’와 ‘흑자’를 가른 적이 있던가. 시민과 노동자들도 동의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우정사업본부를 일본처럼 공사화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오히려 정부는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면서 국가재정의 부담을 줄인 우정노동자들의 노고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우체국예금과 보험사업으로 얻은 수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수입을 감안한다면 우정사업본부의 성과는 ‘흑자’ 정도가 아니라 ‘알짜’ 중의 ‘알짜’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 수익은 우선적으로 집배공무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쓰이는 것이 상식일 게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인력 증원에 합의했습니다.” 감히 짐작하건대 6월 중 나올 뉴스 꼭지다. 정부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소식을 접하게 되면 기쁨보다 안타까움도 클 것이다. 집배인력 증원은 한국노총과 합의한 사항이기도 하거니와 인력부족 원인은 수십년 동안 확인된 문제고 해결책도 충분히 연구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원까지. 그런데 왜 꾸물거리다가 더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보고서야, 더는 못 참겠다고 소리칠 때까지 기다린단 말인가.

최근 진행되는 정부의 노동정책 집행 과정은 대부분 이와 비슷했다. 지난주 노동자들이 파업을 철회하면서 마감된 버스 사태도 그렇지 않았나. 따지고 보면 우정노조와 자동차노련이 한 요구는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거치더라도 큰 갈등이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절대다수 시민과 노동자들이 동의하는데, 그저 허송세월할 이유가 있겠나. 정책 집행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실기하면 같은 돈을 쓰고도 욕먹는 게 세상사가 아닌가. 더 늦기 전에 우정사업본부가 나서라. 3만 우정노조 조합원들을 응원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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