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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 한 약속을 어기는 정부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18년 12월10일 밤, 김용균이라는 하나의 세상이 사라졌다. 공공기관이 그렇게 위험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부모는 통곡했고, 위험한 현실을 바꿔 보려고 애쓰다가 김용균씨를 잃은 동료들은 비통해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위험한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해서 죽음을 생각했던 노동자들, 건강보조제를 챙겨 가며 무리하게 일해야 했던 노동자들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마음 아파했다. 특별한 죽음이라서가 아니라 흔한 죽음이어서 아팠다. 1년에 2천400명 정도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산업재해로 죽는다. 하루에 여섯 명 이상이 죽음을 맞는다는 말이다. 산재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 그래서 너무나 소중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 적용 범위를 늘리고, 안전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묻고, 유해·위험업무에 도급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에 노동자들은 이 법안의 통과를 염원했다. 비록 국회 논의 과정에서 처벌 하한이 빠지고, 도급금지 업무가 좁혀져서 구의역 김군과 김용균씨의 업무는 해당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를 바랐다. 여당은, 일단 국회를 통과하면 하위법령을 제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와 동료들은 그 약속을 믿었다. 이미 정부에서 몇 차례 재발방지 대책을 제대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싸웠고 지난해 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기적처럼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올해 4월 고용노동부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하위법령을 입법예고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하위법령은 정부가 만드는 것이다.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니니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제대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노동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의 정신을 반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용도 후퇴시켰다. 도급승인 범위에 김용균씨가 하던 업무가 포함되리라고 기대했지만 김용균씨의 업무를 도급승인 업무 범위에서 제외했다. 김용균씨가 하던 업무는 매우 위험했다. 정부도 그 위험이 하청구조 때문임을 인정했다. 그러고도 그 업무를 도급승인 업무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승인 대상을 ‘화학물질 취급작업’으로 좁혔는데 하위법령에서는 이마저도 4개 화학물질의 설비·보수·해체·철거작업으로 국한해 버렸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원청 책임을 강화했다고 자랑하더니 건설기계 27종 중 2종과 리프트만 원청 책임 대상으로 정했다. 한 해 120명이 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죽어 가는 현실은 무시됐다. 특수고용 노동자도 보호 범위에 포함했다고 광고하더니 하위법령에서는 9개 직종만 보호하겠다고 한다. 작업중지의 경우 법안에서 동일업무만 작업중지를 하도록 좁힌 것이 문제였는데, 하위법령에서는 여기에 더해 사업주의 작업중지 해제 신청 이후 4일 이내에 해제심의위원회를 열도록 명시해서 졸속적인 작업중지 해제를 부추기고 있다.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은 김용균씨의 죽음 앞에 했던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김용균씨의 죽음을 통해 위험을 비정규직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 비용이 들더라도 안전장치를 제대로 만들게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정부도 그렇게 말했고, 여당 국회의원들도 노동자가 죽는 현실을 바꾸겠다고 했다. 그런데 김용균씨의 죽음이 조금씩 잊혀 가니 정부는 후퇴한 하위법령을 들이밀고, 약속했던 여당 국회의원들은 부인하거나 침묵한다. 노동자 죽음 위에 이윤을 쌓아 올리는 기업의 살인행위를 계속 방조하겠다는 것이다.

김용균씨의 죽음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일터에서 죽었다. 30대 집배원이 집안에 파스만 남긴 채 과로로 숨졌다. 공사현장에서 엘리베이터가 추락해 젊은 노동자가 숨졌다. 공장에서 기계장비에 깔려 사망했다. 낙하물에 맞아 사망했다. 폭발로 사망했다. 폐수에 빠져 사망했고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일산화탄소에 질식해서, 저장탱크가 폭발해서 사망했다. 이렇게 많은 김용균들이, 살기 위해 간 일터에서 주검이 돼 돌아왔다. 사망의 원인은 다 다르지만 실질적인 원인은 하나다. 노동자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것. 간절한 마음으로 요구한다. 이 죽음들에 제대로 책임을 느낀다면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을 철회하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이 죽음의 무게를 담아 제대로 다시 만들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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