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삼성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반도체공정 노동자들을 10년간 추적조사한 결과가 22일 공개됐다. 반도체 노동자 혈액암 발병·사망 위험이 다른 노동자에 비해 최대 3.68배나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반도체공정 역학조사는 '통계적 유의성'이 떨어진다거나 '과학적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백혈병 등 질병과 업무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데 활용됐다. 정반대 결과를 도출한 이번 추적조사가 반도체공정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승인 문턱을 낮출지 주목된다.

2010년 이전 입사한 여성 오퍼레이터 혈액암 위험 높아
"정확한 발암 요인은 규명 못해 … 클린룸 작업환경 영향 추정만"


이날 안전보건공단은 반도체 제조공정 노동자의 암 발생과 사망 위험비를 추적조사한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실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98~2015년(사망자는 2016년) 발생한 암환자를 관찰·추적한 지난 10년간(2009년 1월~2019년 2월)의 연구 결과다. 조사 대상은 2009년 당시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등록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KEC·DB하이텍의 전·현직 노동자 20만1천57명이다.

이번 조사는 2007년 황유미씨 사망 전후로 같은 공정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실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안전보건공단이 2008년 실시한 역학조사와 관련이 있다. 당시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반도체공정에서의 백혈병 발병률이 일반인 평균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발표해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조혈기계암은 인구 10만명당 두세 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병이다. 발생률 자체가 워낙 낮다 보니 짧은 추적 기간으로는 위험도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구원은 정확한 원인규명을 위해서 코호트(통계상 같은 유형별로 분류하는 것)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올해까지 추적조사를 했다.

그 결과 2010년 이전 입사한 여성 오퍼레이터의 백혈병 발병 위험은 전체 노동자 1.55배, 사망 위험은 전체 노동자 대비 2.3배로 나타났다.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림프종은 2010년 이전에 입사한, 특히 20~24세 젊은 여성 오퍼레이터에게서 두드러지게 발병했다. 발생 위험비는 전체 노동자 대비 1.92배, 사망 위험비는 3.68배나 높았다. 혈액암 외에 다른 질병도 연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갑상선암이나 위암·유방암·뇌 및 중추신경계암·신장암의 발생 위험비가 높았다.

조사책임자인 김은아 연구원 직업건강연구실장은 "암질환의 특정 원인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2010년 이전 반도체공정 클린룸의 작업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이전 입사자의 경우 비호지킨림프종 94건, 백혈병 76건이 발생한 반면 2011년 이후 입사자는 비호지킨림프종 2명, 백혈병 3명으로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2010년을 전후로 공정 자동화와 생산 제품의 변화가 이뤄지면서 노동자 작업환경도 크게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원이 '추정'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반도체 제조공정의 작업환경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2013~2017년 사이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와 최근 2년 이내 취급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만 검토했다. 기업들이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혈액암 등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은 아예 검출되지 않거나 기준치의 10%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이후 반도체공정 안전?
위험의 외주화 가능성에도 하청업체는 조사 대상에서 빠져


이번 조사로 드러난 사실은 2010년 이전 입사자, 클린룸에서 작업을 많이 한 여성 오퍼레이터에게 혈액암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재 반도체공정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과전문의는 "이번 조사에서 2011년 이후 입사자는 추적 기간이 길어야 5년에 불과해 위험이 드러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며 "반도체공정의 위험한 업무가 협력업체로 넘어가는 추세인데 하청노동자는 조사 대상에서도 빠져 있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전자 화성공장 하청업체에 2011년·2013년 각각 입사해 2014년 백혈병과 비호지킨림프종이 발병한 제보자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은 이번 역학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처럼 드러나지 않은 전자산업 희귀질환자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전자산업 중소·하청업체 노동자 건강실태까지 확인해야 하는데 정부는 대상자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단 관계자는 "반도체공정이 워낙 영업기밀이 많다 보니 하청업체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유정옥 전문의는 "중요한 것은 전자산업의 직업병 예방"이라며 "기업들이 10~20년 전 작업환경측정 결과조차 영업기밀이라며 숨기기 급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노동자에게 전가한 산재 입증책임 부담을 덜고, 산재인정 문턱을 낮춰 보다 많은 피해자 사례를 확보한다면 원인 규명과 예방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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