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비준동의안 국회 제출과 관련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한다.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잡았다.

노사정 합의에 실패하고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유럽연합(EU) 압력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나름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제도개선 방향을 놓고 노사는 물론이고 여야 이견도 크다. 정국이 내년 총선을 향하는 상황에서 국회 동의나 법 개정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105호 협약 제외한 3개 협약 비준 추진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4개 ILO 기본협약 중 105호 협약을 제외한 3개 협약에 대해 “정기국회를 목표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협약 비준에 필요한 관련법 개정과 제도개선을 동시에 추진할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비준하지 않은 기본협약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98호) △강제노동 협약(29호) △강제노동 철폐 협약(105호)이다. 이재갑 장관은 “105호 협약은 우리나라 형벌체계, 분단국가 상황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일단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ILO 기본협약 비준 관련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가 지난달 12일, 바통을 이어받은 운영위원회가 이달 20일 논의를 종료했다.

한국 정부에 한·EU FTA에 명시된 ILO 협약 비준 노력의무 이행을 요구한 EU측은 무역분쟁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패널을 소집하기 직전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비준동의 절차와 법 개정 작업을 동시에 추진해 협약 비준과 무역분쟁 해소효과를 거두겠다는 속내로 풀이된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협약 비준 추진의사와 함께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했기 때문에 한·EU FTA상 ILO 협약 비준 노력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EU측에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여당과 노동계가 함께 노력해야”
“선 비준 아니면 이번 정권서 힘들 것”


문제는 국회 동의와 법 개정 가능성이다. 노동부는 지난달 15일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 공익위원들이 마련한 권고안을 바탕으로 입법을 추진한다. 공익안에 대해 노사단체 모두 반발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정부 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재계 요구로 공익안에 담긴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파업시 직장점거 규제를 반대하고 있다. 실업자와 해고자의 기업별노조 임원자격을 제한한 것도 논란이다.

반면 한국경총은 “공익위원안은 경사노위 차원의 노사합의안이 아닐 뿐만 아니라 노동계 입장에 편향된 안임을 유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상황도 만만찮다. 자유한국당은 ILO 기본협약 비준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국이 사실상 내년 총선국면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비준동의안이나 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합의는 고사하고 협상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이날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하는 핵심협약(기본협약)의 내용은 우리나라 노사관계 토양에서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사갈등을 넘어 자칫 정치권에 몰아닥칠 후폭풍을 감안한다면 경제폭망 문재인 정부가 가볍게 움직일 사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의 동물국회에서는 제대로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년 총선까지 바라보고 정부·여당은 물론 노동계도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정부 조치로는 기본협약 비준이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먼저 비준하거나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될 것을 정부가 또다시 법 개정 핑계를 대고 있다”며 “정부안이 공익안보다 후퇴할 가능성이 높고, 자유한국당이 더 후퇴시키려 하면 이번 정권 내에 비준은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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