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ILO협회와 더불어민주당 이용득·송옥주 의원실 주최로 2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ILO핵심협약 비준 쟁점과 과제 토론회. <정기훈 기자>

“국제법적 관점에서 보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의 주체는 국가다. 노사 합의가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ILO 기본협약은 기본적 인권에 관한 것으로 노사 타협의 산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2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9간담회실에서 열린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펼친 주장이다. 국회 논의와 사회적 대화를 핑계로 ILO 기본협약 비준을 늦추고 있는 정부의 소극적인 행보를 탓하는 말이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ILO협회·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 송옥주 의원이 주최했다. 참가자들은 “기본협약 비준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국내 절차 없이 우선 비준하는 국가도 있다"

올해는 ILO 100주년이 되는 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을 공약했지만 이행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ILO 8개 기본협약 중 결사의 자유 협약(87호)과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98호),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협약(29호·105호)을 비준하지 않았다. 정부는 ‘선 입법 후 비준’을 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5월 현재 ILO 회원국 187곳 중 8개 기본협약을 모두 비준한 국가는 144곳이나 된다.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7개국뿐이다. 김근주 연구위원은 “규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ILO 기본협약은 헌장상 의무에 대한 확인이므로 회원국 정부가 당연히 비준의무를 부담한다”며 “협약 비준에 있어 다른 협약보다도 좀 더 신속한 방식이 요구되는 점을 고려해 엄격한 국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우선적 비준(선 비준)을 하는 국가도 있다”고 말했다.

ILO가 다른 국제기구와 달리 노사정 3자 구성을 원칙으로 결성된 조직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사회적 대화에 나섰던 까닭이다. 공익위원들은 지난달 15일 노사 입장을 반영한 권고안을 제시했지만 양측의 반발만 샀다.

김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노사는 협의 주체이지 ILO 기본협약 비준에 노사 합의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며 “ILO 기본협약은 기본적 인권에 관한 것으로 사회적 대화는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지 합의라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절차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지체는 보편적인 국제규범 부정"

시급한 과제와 장기 과제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법 개정을 이유로 협약 비준이 지연되는 상황에 묶여 있지 말자는 뜻이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우리나라 병역제도에서 ILO 강제노동 관련 협약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 점들이 발견되며 특히 쟁의행위에 관한 다양한 형사처벌 규정들에 관해서는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개선방법을 수립할 때 비준 전에 시급하게 추진할 과제와 비준 후 시간을 두고 추진할 과제로 나눌 필요가 있다”며 “협약 위반 가능성이 높지 않은 사항들은 일단 협약을 비준한 이후 시간을 두고 개선방향과 여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면서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조용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LO 기본협약은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는 국제규범으로 국내 제도나 상황의 특수성을 이유로 그 적용의 예외나 유예가 허용되기 어렵다”며 “더 이상 지체하면 보편적인 국제규범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데, 그러한 결과를 피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보편적 권리와 가치를 보장하는 공정국가 위상을 확립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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