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경기도 고양에서 발생한 저유소 화재사건 수사 과정에서 경찰관이 이주노동자인 피의자 A씨에게 반복적으로 "거짓말하지 마라"고 추궁한 것은 자백 강요에 해당한다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했다. 인권위는 해당 이주노동자 신상정보를 언론에 공개한 것은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봤다. 해당 경찰관을 주의조치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직무교육을 실시하라고 해당 경찰서장과 지방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20일 인권위에 따르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고양시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경찰관이 피의자를 신문하면서 반복적으로 “거짓말 아닌가요”라고 진술을 강요했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센터는 경찰관이 언론에 피의자 이름·국적·나이·성별·비자종류를 기재한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고 했다.

신문을 맡았던 경찰관은 “CCTV 자료 등 명백히 확인된 내용을 토대로 신문했다”며 “A씨가 확인된 사실과 상반된 다른 말을 해 거짓말하지 말라고 정당하게 신문했을 뿐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거나 강압수사를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A씨는 지난해 10월8일 긴급체포된 뒤 28시간50분(열람시간 포함) 동안 4차례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피의자 신문조서 기록상 경찰관이 총 62회에 걸쳐 "거짓말이 아니냐"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이다"고 말했다. 4차 피의자 신문 영상녹화자료를 분석해 보니 경찰관이 A씨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123회에 걸쳐 "거짓말"이라는 발언을 했다.

인권위는 “경찰관이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진술을 강요하거나 진술의 임의성을 잃게 할 염려가 있는 언동을 함으로써 피의자의 진술할 권리와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경찰관의 거짓말 발언은 사실상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으로 현행 형사사법 체계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신문 과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해당 사건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고 언론사 취재로 국민에게 상당히 알려진 사건이더라도 피의자 신상정보를 상세히 공개할 필요성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스리랑카 국적의 A씨는 지난해 10월 풍등을 날려 고양 저유시설 화재를 일으켰다는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반려했다. 센터는 이날 논평에서 “인권위 결정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압적 수사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있다”고 환영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