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민중당 의원과 건설노조·청년전태일 회원들이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추락해 사망한 고 김태규씨 산재사망사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동생은 승강장 안에서 쉬겠다는 동료에게 위험하다고 말할 만큼 현장 위험성을 잘 알고 조심성이 많았어요. 어떤 상황 때문에 추락했는지 밝혀지기 바랍니다.”(고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

지난달 20대 일용직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떨어져 숨진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건설 노동자 안전을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유가족과 노동·사회단체는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고 김태규(25)씨는 지난달 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 5층 높이에 있던 화물용 승강기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사고 당시 고인은 안전화대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화물용 승강기 문은 열린 채 운행됐다. 고인은 ㅇ건설사 하청업체 ㄱ사에 일용직으로 고용돼 있었다. 경찰은 이달 초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현장소장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고용노동부도 “관련 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전했다.

“전쟁터보다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

20일 박승하 일하는2030 대표는 고 김태규씨가 일한 현장과 관련해 “누구라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노동 환경이었다”고 꼬집었다. 고인은 승강기 문까지 열린 상태에서 일했다는 지적이다.

안전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30대 건설노동자 서원도씨는 “고인이 (해당 현장에서) 3일째 일을 하면서 안전화가 아닌 일반 운동화를 신고 일했다는 기사를 보고 기함했다”며 “현장 바닥엔 뾰족한 못을 비롯해 신체 상해를 입힐 만한 것이 널려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고인은 안전모를 지급받지 못해 현장에 방치된 안전모를 주워다 썼다고 하는데, 건설현장은 언제 어디서 낙하물이 떨어질지 모르는 만큼 안전모 착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전했다.

30대 건설노동자 나두일씨는 “건설현장에는 매년 700명, 하루에 2명꼴로 노동자가 죽어 나간다”며 “수많은 불법과 다단계 하도급이 난무하고 '빨리빨리'라며 재촉하는 건설사들 입장만 우선하는 곳에선 안전 부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런 곳에선 언제든 내가 고 김태규씨처럼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부실한 안전관리나 하나 마나 한 재발방지대책이 이런 비극을 이어 가고 있다”며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 전쟁터보다 더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시행령 56조에 명시된 공사금액 기준을 삭제할 것을 주문했다. 김종민 청년전태일 대표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67조에는 건설공사 발주자가 산재예방을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됐지만, 시행령 56조에는 ‘총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인 공사’로 제한했다”며 “공사금액 50억원 기준을 삭제하거나 기준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노동부 초기 부실수사 의혹”

유족과 동료들은 사고 발생 뒤 경찰과 노동부의 초기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유족 김도현씨는 “사건 발생 닷새째인 지난 15일 사측이 5층에 있던 화물용 승강기를 1층으로 내려 버렸다”며 “현장을 훼손했는데도 노동부와 경찰이 사실상 방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동생의 죽음과 관련해 ‘실족사’라고 말하기도 했다”며 “노동부는 수사 상황을 아직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검찰을 통해 결과를 확인하라는 말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증언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 주장과 관련해 “실족사라고 했던 말이 근로자 개인 과실로 인한 사망이라는 의미를 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는 “현장을 다 확인했고 사진 촬영이나 부수적인 것은 다 마무리됐기 때문에 그 뒤 현장 보존 필요성은 크게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경찰은 승강기 문을 열어 둔 상태에서 작업한 것 등에 현장 총괄책임자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해 검찰에 송치했다”며 “과실 입증은 명백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노동부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수사를 완료했고 검찰에 송치했다”며 “우리가 어떻게 판단했는지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경찰이 과실치사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해도 현장 관리자만 처벌받고 벌금도 별로 없을 것”이라며 “업주는 똑같은 일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으니, 꼬리 자르기 하지 말고 원청을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 김태규씨 유가족과 청년 전태일·김종훈 민중당 의원 등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고 김태규씨 사망과 관련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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