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김상희·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이은 간호사의 죽음이 가져온 변화와 향후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제정남 기자>

간호사가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지난해와 올해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의료원에서 연이어 발생했다.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으로 의료기관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가 촉발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사용자에게 직장내 괴롭힘 예방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7월16일부터 시행된다. 이것으로 완료된 것일까.

"직장내 괴롭힘, 개정 근기법만으로 해결 안 돼"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김상희·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이은 간호사의 죽음이 가져온 변화와 향후 과제' 토론회를 주최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근기법 개정과 정부 대책으로는 직장내 괴롭힘과 그에 따른 자살을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3월6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서울아산병원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업무상재해로 판정했다. 공단은 죽음의 이유가 "간호사 교육 부족 등 구조적 문제에서 야기된 과중한 업무"라고 봤다. 병원 시스템이 노동자를 죽였다는 의미다.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고용노동부에 서울아산병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 노동자를 죽게 만든 병원의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최원영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가(간호사)는 토론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조사하고 범인을 잡는 것이 당연한데도 노동부는 병원을 개선시키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느냐"고 되물었다. 고인의 산재승인 과정에서 유가족을 대리했던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발제에서 "사고성재해는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처벌규정이 있어 예방조치가 가능하지만 직무와 관련한 과로·스트레스로 유발된 자살사건에 대한 처벌조치와 적극적인 예방조치 의무는 사실상 없다"며 "자살 산재도 중대한 범죄, 기업살인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고 민·형사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3월12일 서울의료원 서지윤 간호사 죽음의 진상을 밝힐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고인이 숨진 지 2개월여 만이다. 진상대책위는 최근 활동기한을 2개월 연장했다.

"예방정책 위해 업무상 원인에 따른 자살규모 파악해야"
노동부 "의료기관 100곳 하반기 기획감독"


김경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새서울의료원분회장은 또 다른 발제에서 "서울의료원과 서울시의 미온적 협조로 대책위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지윤 간호사와 함께 일한 동료 간호사들의 인터뷰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며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서울시는 진상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돈벌이 중심의 부족한 간호인력, 간호사를 부품으로 사용하는 보건정책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간호사 죽음을 계기로 업무로 인한 자살 예방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노동자 건강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두 간호사 죽음 사건을 접근해 볼 수도 있다"며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한 노력과 함께 간호사 등 특정직종 자살규모를 확인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자살 예방정책 수립을 위해 업무상 원인에 따른 자살 규모를 추적·조사해야 한다는 얘기다.

노동부·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준비하는 관련 대책을 설명했다. 고병곤 노동부 산업보건과 사무관은 "하반기에 병원이나 의료기관 100곳을 기획감독할 예정"이라며 "서울의료원·서울아산병원 같은 자살발생 사업장은 특별근로감독에 준해서 자세히 살펴보고, 장시간 근로 문제사업장은 근로감독도 하겠다"고 말했다. 홍승령 복지부 간호정책TF팀장은 "간호사 근무환경과 업무를 어떻게 개선시켜야 할지를 전문적으로 고민하기 위해 2월 TF를 발족했다"며 "간호사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인력 전체가 일하다 겪는 업무부담과 안 좋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고 박선욱 간호사는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한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2월15일 숨진 채 발견됐다. 생전 지인들에게 "병원측이 업무교육을 제대로 시켜 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서지윤 간호사는 2013년 서울의료원에 입사해 병동근무를 하다 지난해 12월18일 간호행정부서로 옮겼다. 새 부서에서 일한 지 20여일 만인 올해 1월5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병원 사람의 조문을 받지 마라"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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