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지난달 19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하부영 지부장이 만든 자리였다. 내용은 언론에 보도됐다. 그랬나 보다 했다. 이후 하부영 발언을 받았다. 읽는데 여운이 남았다. 곱씹으며 읽었다. 조각조각 단신 기사로 그친 언론의 보도들이 아쉬웠다. 그래서 여기 소개한다. 노파심에 한마디 붙인다. 내용 중 통계의 세세한 측면에선 다소 거친 점이 있을 수 있다. 거기에 꽂히지 말고, 발언 취지에 초점을 맞췄으면 한다.

“87년 노조 설립 이전 현대차 노동자 시급 500원·월급 12만원, 10시간 주야 맞교대로 18만~20만원 받아 단칸 월세방에 살았습니다. 현장은 두발 단속·폭언·폭행이 다반사였고, 인사고과로 시급도 A·B·C·D 차등 인상했습니다.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노조가 설립되며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97년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임금이 400% 인상됐습니다. 그렇게 32년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돌아보니 우리는 노동귀족이라 불리고, 사회 양극화가 한국 사회 가장 큰 문제이고, 대기업과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해결해 달라 요구했지만 임금격차는 더 커져 가는데, 과연 우리는 노동자 간 평등임금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해 자주적·주체적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반성하며,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효과는 아직 적지만 사회적 파급력이 크기에 성공적이라 평가합니다.

임금이 높아져도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걸 보며, 인간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은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 32년이 걸렸습니다. 연봉 1억원을 받아도 90%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을 보며, 자본주의에서 임금인상으로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겠다는 노동운동 방향성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 겁니다.

독일의 산별노조를 배워 오며 사회 시스템과 임금체계는 가져오지 못했기에 그 한계가 지속된다고 봅니다. 독일 노동자 임금 중 40%가 세금이고, 실업·노후·무상의료·무상교육 사회보장체계가 있으니, 세계 최저 수준인 주 35시간을 넘어 주 28시간 노동제가 사회일반화돼 갑니다. 60%의 임금으로 행복하게 먹고살아 갑니다. 또 임금격차 폭이 적으니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쉽게 달성하고, 노동자들은 세금 분배나 정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치세력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겁니다.

한국도 노동자 세금을 보면 평균 갑근세율 10%, 부가가치세 10%, 개인연금보험료 20%를 합치면 이미 세금 40%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은 원천징수해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로 책임져 주지만, 한국은 개별 임금으로 지급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맡겨 버리니 아무리 많이 받아도 뒤로는 다 빼앗기는 구조입니다. 개인이 100% 임금을 받아 집 사는 데 쓰고 먹고살며 자녀교육비·의료비·보험료 등을 쓰다 보면 노후대책비도 부족합니다. 정부와 자본에 요구만 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그런 의식 변화가 일어나면 곧 그런 세상이 될 겁니다. 주체의 문제로 봅니다.”

지면이 좁아 발언의 줄기를 중심으로 담았다. 한국 노사관계의 상징인 현대차, 그곳의 노조를 이끄는 현직 지부장의 생각이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나는 하부영의 발언을 받아 읽으며 반가웠다. 솔직히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현직 지부장 입에서 이런 발언이 이렇게 빨리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최소 3년, 최대 5년 정도 더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차지부가 힘이 세니까 지부장은 거침없이 발언할 것이라는 일반 인식과 달리, 그 자리는 안팎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발언과 행동 하나에도 숱한 비난이 뒤따르는 자리라서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하부영은 배배 꼬지 않고 발언했다. 발언은 몇 가지 측면에서 파격적이다. 노동자 임금격차가 더 벌어지는 현상에는 정부와 자본뿐 아니라 노동운동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 임금인상으로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겠다는 운동 방향성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그것을 현대차지부 현직 지부장으로서 ‘공개적인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임금인상 투쟁 중심에서 증세 및 사회보장 투쟁으로의 전환을 얘기하며 독일 사례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 바 하부영의 지향은 유럽에 갇혀 있지 않고 당면 사례로 독일을 거론하는 것이지만, 이것으로도 민주노총 풍토에선 용감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십수 년 전부터 노동운동가들 술자리에선 북유럽 얘기가 종종 있었다. 방향 잃은 노동운동의 대안으로 북유럽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공개 자리에선 누구도 꺼내지 못했다. 개량주의라는 낙인 때문이었다. 한국 노동운동에서 개량주의 낙인은 호환·마마보다 무섭고, 심지어 기회주의나 조합주의보다 더 혐오스러운 낙인이었다.

나는 하부영의 발언 줄기에 동의한다. 하부영 같은 간부·활동가들이 이 노조 저 노조에서 거침없이 나서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상상한다.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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