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둘러싼 “선 입법 후 비준”이냐 “선 비준 후 입법”이냐는 논란에 ILO 사무국이 공식적 견해를 내놓았다. 코린 바르가(Corinne Vargha) ILO 국제노동기준국장은 9일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의 주최로 열리는 ‘ILO 핵심협약 비준 방안 심포지엄’에서 발표 예정인 연설문에서 “법제가 완벽해지고 모든 이해당사자가 만족할 때까지 비준을 미룬다면 노동권 보호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관행의 진전은 더욱 지체될 것”이라면서 정부와 국회에 선 비준을 촉구했다.

ILO 국제노동기준국장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은 노사정 각 주체가 실질적으로 대표되도록 하기 위한 근본적인 요소이며, 의미 있는 사회적 대화의 토대로서 87호·98호 협약의 비준을 ILO 총회에서 결의했음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결사의 자유 원칙에 비춰 한국의 법제에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모든 노동자가 어떠한 차별도 없이 단결하고 노동조합 규약에 따라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며, 이러한 기초적인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노사관계에 중대한 혼란을 초래할 문제가 아니라 노동 분야에 민주주의의 원칙을 확립하겠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ILO 협약 비준 행위는 ILO 내 감독기구의 정례적 모니터링을 수용하고 노동기본권 존중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며, 협약 비준 후 발효까지 1년의 시간 동안 법제 개선 등의 문제를 풀어 나갈 충분한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회에도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준·동의함으로써 ILO 기본협약의 비준을 진전시키겠다고 약속한 것인 만큼 이에 관한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촉구했다.

ILO 사무국측에서는 국내법 개정을 완료한 후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하겠다는 것은 노동기본권의 진전을 오히려 지체시키는 것이며, 협약 비준 행위가 국내 법제를 국제기준에 맞게 개선해 나가는 첫걸음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제 공은 문재인 정부에 넘어왔다. ILO 협약 비준을 위해 이와 상충하는 법 개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은 적어도 국제사회 시각에서만큼은 타당하지 않다. 국내적으로는 ILO 협약 비준에 관한 국회 동의가 필요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ILO 기준과 상충하는 국내법을 완벽히 개정한다는 법안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협약 비준을 계기로 국내 법제를 개선해 나간다는 약속에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ILO 기본협약 내용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 3권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해 ‘헌법적 가치 수호’를 위해 협약의 선 비준을 권고한 바 있다. 그동안 한국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헌법의 노동 3권 실현을 구체화하는 법이 아니라, 사실상 노동 3권을 억압하는 ‘단결금지법’으로 기능해 왔다. 그런데 이런 억압적 법제 활용에 앞장섰던 장본인은 바로 정부다. 전교조·공무원노조 등 현재 첨예한 쟁점이 되는 사안에서나, 사실상 허가제로 기능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 등의 단결권을 막고 있는 노조설립신고 제도에 있어서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정부이기도 하다. ILO 국제노동기준국장이 지적하는 것처럼 최우선적이자 필수적으로 법제 개선이 필요한 지점은 정부가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는 더 이상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국회로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ILO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을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 ILO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거나, ILO에 비준서를 기탁하는 것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도록 국내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가장 믿음직한 선언이자, 노동 3권 실현을 향한 노조법 개정 작업의 실질적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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