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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조선소 노동자>] 사고로 무너진 노동자의 고통스런 일상과 마주하기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몇 해 전 철도기관사로 일하다 자살한 노동자의 산업재해사건을 하게 됐다. 그분은 자살 9년 전 우연히 사망 사고를 낸 후유증으로 남몰래 정신과를 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철도로 뛰어든 누군가를 칠 수밖에 없었고, 그 죽음의 순간이 9년 내내 그의 머릿속을 따라다녔다. 가족들도 온전히 고인의 고통을 알 수 없었고, 그 끝은 결국 자살이었다. “설마 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라며 눈물짓는 부인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산재신청은 공단에서 불승인됐다. 기나긴 소송 끝에 결국 법원에서 고인의 자살이 업무상재해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교과서를 다시 한 번 펼쳤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사고 이후 30년이 지나도 발생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곧 잊힐 사고이고 하나의 기사겠지만 누군가에게는 30년간 자신과 가족을 고통 속에서 절망하게 만들고, 그리고 그 끝에 자살이 있을 수도 있다.

<나, 조선소 노동자>(사진·코난북스) 표지에는 ‘배 만들던 사람의 인생, 노동, 상처에 관한 이야기’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배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인생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2017년 5월1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당시 생존자이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 9명의 호소다. “인생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하청의 하청을 받은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피눈물 섞인 절규다. 이들은 모두 그 현장에서 친구를, 가족을, 그리고 동료를 잃고 그 죽음의 광경을 목격했던 하청노동자 그리고 산재 노동자들이다.

힘들었다. 읽는 내내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힘들었다. 사고로 인해서 일상과 정신이 무너져 버린 노동자들의 고통스런 현실과 일상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 고통과 깊이를 모르는데, 지각할 수도 없는데 그들의 아이와 가족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노동자 9명의 낮은 목소리를 한꺼번에 읽고 마주보기엔 가슴이 무거웠다. 9명의 구술기록을 한 번에 읽을 수 없어 한 편씩 읽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5년 전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유족들이 떠올랐고, 결국 다 읽지 못하고 덮었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육성을 기록한 책인 <금요일에 돌아오렴>도 생각났다.

미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미안했다. 우리는 반복되는 사고에 너무 무뎌져 있었고, 나 또한 그런 관성에 젖어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불과 2년 전 생계를 위해 노동절에 출근했던 하청노동자들 중 상상할 수도 없는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죽고, 25명이 외상을 입었다. 그런데 그 사고로 인해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얼마나 산재가 인정됐는지 몰랐다. 실제 수백명의 하청노동자들이 당시 사고를 목격했지만,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산재가 인정된 노동자는 겨우 11명뿐이다. 그것도 대부분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의 도움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특히 이들의 산재신청 과정에서 보여 준 일부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고압적인 말과 태도는 산재 노동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줬고, 1년 이상이 걸린 상병 심의와 판정 절차는 오히려 적절한 치료에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고를 발생시킨 장본인인 삼성중공업은 사실상 인당 50만원의 벌금만으로 모든 책임을 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에게 단 한 번의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와 정부에서는 실효성 있는 보호대책을 마련하거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적절하고 효과적인 심리 치료를 시행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도, 다쳐도, 아파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 기형적인 구조는 결국 노동자들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현실을 지속시킬 뿐이다.

▲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고마웠다. 그래도 누가 이렇게 노동자들의 얘기, 산재사고 이후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준 적이 있는가 싶었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을 잃고, 사고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 중 80% 이상이 하청노동자인 현실에서 과연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는데, 그 출발은 바로 산재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현실과 유리된 수식어와 통계로 점철된 정부의 산재예방 대책, 교수 등 전문가들의 용역보고서가 아니라 산재 노동자들이 흘린 눈물과 고통스런 말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 분이 얘기하셨다. “너무 안 됐고 해서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게 앞으로 도움이 된다면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 용기가 정말 고마웠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아직도 2년 전 크레인 사고 후 고통 속에서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노동자들과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아파하고 기록했던 11명의 구술기록단원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산재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 보기를 모두에게 권한다.

권동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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