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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혁명이 진행 중이다조건준 <노멀 레볼루션> 저자
▲ 조건준 <노멀 레볼루션> 저자

두 혁명이 삶을 관통한다. '산업혁명'과 '권리혁명'이다. 전자는 시민을 4차 산업혁명 적응자와 부적응자로 나누려 한다. 후자는 그런 구분을 넘어 모든 시민 권리를 옹호한다. 전자는 21세기 산업화고 후자는 21세기 민주화다. 전자는 2030년까지 삼성이 시스템반도체에만 133조원을 투자하듯 막대한 자금을 들여서 만드는 혁명이다. 후자는 돈에 대한 탐욕을 넘어 권리 자각을 통해 일어나는 혁명이다. 전자는 부자들이 첨단기술을 소유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혁명이다. 후자는 보통 시민들이 기술권력에 밀리지 않고 권리 주인이 되는 '아무나 혁명'이다.

"정의사회 구현." 1980년대 이런 단어들을 기억한다. 엄숙한 모습의 독재자는 국법질서 확립 같은 얘기를 했다. 시민들은 요즘 몇몇 영화에 등장하는 "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정부 수립" 등을 외쳤다. 직선제로 바뀐 대통령선거에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사독재 후예들과 민주화운동세력의 권력을 둘러싼 경쟁과 연합이 뒤엉켰다. 그래서 20세기 후반을 "권력의 시대"로 기억한다.

"세계화" "국제기준"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하더니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왔다.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가 넘쳤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경제를 망친 재벌은 비판을 받았다. 노동자도 쓸려 나가며 고용빙하기가 왔다. 뉴밀레니엄과 함께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했다. 부자를 향한 선망과 추앙을 표현했다. 재벌은 경제를 살리는 권력이 됐다.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에 있다"고 했다. 세상은 이윤을 최고로 여기는 시장권력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외환위기 이후 뉴밀레니엄은 "이익의 시대"로 출발했다.

깡패는 힘으로 사람을 겁박하고 억누른다. 군사독재가 한때는 깡패였다. 민주화가 된 듯했지만 시장권력, 돈 가진 자들이 정리해고를 결정하고 정규직이 될지 비정규직이 될지를 결정했다.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 투쟁이 이어졌다. 힘으로 윽박지르는 깡패는 오래 못 간다. 스스로 인정하고 스스로 지키는 규범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입시·고시·공시 등 시험을 통한 '공정한 것'으로 포장된 경쟁이 수직피라미드 질서를 강화했다. 소수는 우등생 다수는 열등생, 소수는 부자 다수는 가난, 소수에게 천국 다수에게 헬조선이 돼 버렸다. 수직피라미드 경쟁체제에서 다수는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ㅇㅈ"(인정)이 떠오르고, 억눌린 욕망을 약자에게 배설하는 "혐오"가 밀려왔다.

헬조선 바닥에 들끓는 에너지는 어떤 식으로든 폭발한다. 그나마 공정한 것으로 포장된 시험까지도 무시해 버리고 야매로 입학한 비선실세 딸에 분노한 이화여대 농성이 2016년 말 탄핵촛불로 이어졌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주권자인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대통령을 끌어내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헬조선을 과거로 밀어내고 새 시대가 열린 걸까. 청와대 주인만 탄핵하면 용암이 식고 화산폭발이 멈출까. 화산폭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투운동은 확장된 여성권리를 보여 줬다. 무권리 직장인들이 노조를 만들어 노동권 주인으로 나섰다. 재벌 수사를 비롯한 적폐청산이 이어졌다.

반발도 있다. 사법농단 법원과 수사권 분리 검찰과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고위공무원들의 반발, 최저임금 인상과 정규직화에 대한 자본가의 반발이 겹친다. 적폐로 몰린 보수세력은 인기가 좀 떨어진 대통령에 맞서 급기야 이념전쟁을 선포했다. 4차 산업혁명론을 만든 자들에 비해 확실히 구린 수구세력은 꼭 80년대 운동권 폼이다.

대통령을 끌어내린 혁명은 터졌지만 삶을 끌어올릴 혁명은 터지지 않았다. 일상을 짓누르는 적폐들을 아직 탄핵하지 못했다. 또 다른 폭발이 오기 전에 미리 쐐기를 박는 유령이 여기저기 떠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 구호가 요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 권력의 시대, 21세기 초 이익의 시대를 지나 이후는 어떤 시대가 될까.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기술권력의 시대일까, 새로운 권리의 시대일까. 두 혁명은 충돌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한다. 부자들이 주도하는 산업혁명은 기술지옥(디스토피아)에 가까울 것이다. 시민권리가 충분할 때 기술천국(유토피아)에 가까워진다.

두 개의 혁명이 진행 중이다. 산업혁명은 적응자인가 부적응자인가로 당신을 가르고 차별한다. 21세기 인권혁명은 권리자인가 무권리자인가를 묻는다. 한쪽에선 촛불로 탄생한 대통령을 끌어당기고 다른 쪽에선 대통령이 저쪽으로 건너갔다고 비판한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대통령이 양다리를 걸쳤는지 반대편으로 건너갔는지가 아니다. 나와 우리는 어디에 서서 무엇을 촉진하는가.

조건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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