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우리가 성폭력 피해자를 생존자라 부르는 이유는 단지 ‘피해자’가 아니라 견디기 힘든 고통을 이겨 내고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주체적인 존재로 다시 명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성폭력 생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우리 기관의 역할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어느 한 개인의 사조직처럼 운영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곳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합니다.”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심문회의에서 그의 최후진술이다. 그는 한 해 전, 지역사회 성폭력 피해자(생존자)와 그 가족들에게 상담·의료·수사·법률 등 통합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지원기관에 계약직 부소장으로 채용됐다. 이 일을 하고자 자신의 아이들까지 전학시키며 연고가 전혀 없는 도시로 이사까지 했다.

그가 출근한 첫날, 기관 소장에게 “채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자 소장은 “감사할 일인지는 3개월 후에 두고 보세요”라고 하거나, 기관 내 다른 노동자들에게 “○○○ 부소장은 3개월 임시직이니 업무보고는 나한테 직접 하세요”라고 말하는 등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질을 시작했다. 그렇게 기관은 소장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교체되며 높은 이직률로 오래 근무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의 3개월 수습기간이 종료될 즈음, 기관 소장은 직원들에게 부소장 평가를 하게 한 다음 직장내 직원들이 부소장인 그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수습기간 근무평가 점수 미달로 그를 해고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그와 같이 일할 수 없는 이유를 수십 가지 깨알같이 적어 낸 동료직원의 평가서도 나왔다.

그러나 외부인사까지 참여하는 인사위원회에서 그런 주관적인 평가서를 가지고 그를 해고할 수는 없었다. 1차 해고계획이 실패하자, 소장은 그간 관행과 다르게 근무평가를 통해 계약직 부소장을 해고할 수 있게 취업규칙까지 불이익하게 변경했다. 아예 조직에서 배제한 채 무시와 따돌림으로 일관하다가 정작 해고할 때는 기관장을 잘 보좌하지 못한 것이 해고사유로 등장했다.

필자가 그의 고통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들어주자, 그는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누구도 그것이 소장의 갑질에 해당한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사회에서 알 만한 권력자가 소장을 하고 있으니 누구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는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그가 직장갑질 생존자로서 당당하게 일터를 바로 세워 나가기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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