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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정신 ② : 사회정의는 근본목적이다
▲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필라델피아 선언은 단호하다. 애매함이나 주저함이 없다. 선언은 사회정의 실현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모든 “정책의 핵심적인 목적”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경제정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평가돼야 하며” “(사회정의라는) 근본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서만” 채택돼야 한다.

사회정의가 목적이고 경제정책은 수단이다. 즉 사회정의 원칙에 반하는 경제정책은 무효로 판단돼야 한다. 정반대 사례를 통해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2005년 대법원은 학교 급식에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정한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서 정한 자유무역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목적과 원칙으로 인정한 가치에 반하는 정책을 무효로 판단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가치가 자유무역인 경우에는 정당하고, 사회정의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아도 좋은 건 아니다. WTO 협정도 다자조약이고, 필라델피아 선언도 다자조약이다. 법을 다루는 자들은 사회정의를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실질적인 재판규범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목적과 경제적 수단의 위계질서를 뒤집는다. 시장과 경제는 목적이 되고 인간과 사회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되면 법과 제도는 경제에 복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경제에 관련된 국제기구들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기업하기 좋은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각국의 법제에 점수를 매겨 평가하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은행의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가 많을수록 점수가 낮고 규제가 적을수록 점수가 높다. 2018년 한국이라는 “경제”(기업환경평가는 국가를 모두 “경제”로 표현한다)의 순위는 전체 190개 “경제” 가운데 5위다. 순위가 높을수록 기업에 우호적인 법제라는 뜻이다. 기업과 투자자들은 이 카탈로그를 들고 상위권 “경제”의 법제를 쇼핑하러 다닐 것이다. 그리고 각국의 정부는 이 고객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최저가 법제 경쟁에 나설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 “2014년 이후 Top 5를 5년간 유지했다”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앞으로 건강한 창업생태계 조성을 지속하는 한편, 기업 경영상 전 주기에 걸친 창업·경쟁 제한적 규제 혁신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콜트·콜텍 같은 기업은 흑자임에도 더 낮은 임금을 찾아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손쉽게 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목적으로서의 사회정의 위상을 바로잡는 일이 긴요하다. 필라델피아 선언과 비슷하게 단호한 태도를 우리는 1948년 제헌헌법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헌헌법은 이렇게 규정했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경제질서의 목표는 우선 사회정의 실현이다. 헌법 규정에서 보듯이 사회정의 실현은 국민경제 발전보다 앞선다. 제헌헌법 입장이 더욱 돋보이는 점은 사회정의를 경제적 자유의 한계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경제적 자유를 시장의 자유, 재벌의 자유로 바꿔 놓고 읽어 보면, 이것이 얼마나 대담한 포부를 천명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행 헌법 규정은 다르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국가는 (중략)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사회정의가 아니라 경제적 자유가 기본의 자리에 놓여 있다. 1987년 헌법 개정에서 왜 사회정의라는 문구가 삭제됐는지는 알 수 없다.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감히 정의를 참칭한 것에 대한 반작용일까? 대신 들어간 경제의 민주화는 그나마 지금 시장과 재벌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유력한 헌법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이 아니라 보완이라는 점에서 제헌헌법과 필라델피아 선언이 보여주는 정도의 단호함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의 민주화를 단순히 시장 병폐를 조정하는 수준의 부수적인 가치로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의 근본목적성에 비춰 다시 시장과 재벌의 자유에 한계를 설정하는 방향으로 재해석하고 확장하려는 노력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박제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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