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에서 파견·용역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5천명에 육박한다. 환자이송이나 청소·시설관리 같은 업무를 한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단계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이다. 3단계로 나뉜 정규직 전환 단계 중 가장 먼저 추진한다는 뜻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립대병원을 통틀어 간접고용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곳은 양산부산대병원이 유일하다. 전환된 노동자는 240여명이다. 사실상 전환율 0%라고 지적하는 노동자들 주장에 힘이 실린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 목소리를 들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

노동의 가치에 반하는 것들이 있다. 고용불안·차별·배제·저임금 고착화·중간착취·공짜노동·강제노동…. 인간의 노동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할 이 같은 유물은 현재 파견·용역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짊어진 굴레다. 그렇기 때문에 파견·용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매우 값진 정책이다.

사회정의에 반하는 것들이 있다. 양극화·불평등·불공정·억압·인권유린·횡포…. 파견·용역 노동자들은 청산돼야 할 이 같은 사회 적폐의 희생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견·용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매우 값진 정책이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내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선언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인 ‘노동존중 사회 실현’에 딱 들어맞을 뿐만 아니라 국가비전인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나 국정지표인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에 부합하는 매우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이 지나고 있는 이 시점, 국립대병원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은 제로다.

무엇 때문인가. 국립대병원 사용자측은 눈치 보기, 시간 끌기, 자회사 추진 꼼수 부리기 태도를 보인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1단계 기관인 국립대병원은 파견·용역 계약만료 시점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도 두세 차례 계약을 연장하면서 정규직 전환을 차일피일 미뤘다. 사용자측 태도 중 대표적인 것은 정규직 전환에 합의하고도 세부사항 합의를 미루기,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하고서도 자회사 전환방안까지 포함한 연구용역 발주하기, 형식적으로 노사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해 놓고 시간 끌기, 먼저 정규직 전환에 합의하지 못하게 방해하기, 다른 국립대병원보다 먼저 타결하지 못하겠다며 핑계 대기 등이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시책에 역행하고 노사합의를 파기하는 무책임한 행태다.

정부는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 계약연장을 남용하지 마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놓고도 국립대병원의 계약연장 남용실태를 조사하지 않았고 감시·감독을 하거나 행정조치를 하지도 않았다. 병원의 파견·용역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환자와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돼 있고, 생명·안전업무의 구체적 범위는 기관에서 결정할 수 있는데도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정책을 총괄하는 고용노동부, 국립대병원을 관할하는 교육부 어느 부처도 국립대병원이 모든 업무를 생명·안전업무로 결정하도록 지도하지 않았다. 노사합의가 파기되고 노사전협의체가 공전하는데도 속수무책 수수방관이다.

공공운수노조·보건의료노조·민주일반연맹 등 3개 산별연맹이 국립대병원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전면투쟁에 나선 이유다. 교육부 앞 천막농성과 청와대 앞 1인 시위, 청와대 앞 공동집회를 하고 의견서를 전달했다. 서울대병원 앞에서는 공동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했다. 8개 국립대병원은 7일 동시 천막농성에 돌입한다. 이달 21일에는 1차 동시파업과 교육부 앞 파업집회를 예정하고 있다.

“희망고문 이제 그만”이라는 구호가 말해 주듯 계약연장을 남발하지 말고 6월 말 계약기간 종료시점에 정규직 전환을 완료하라는 게 국립대병원 파견·용역 노동자들의 절절한 요구다. 파견·용역 노동자들은 계약연장 과정에서 이뤄지는 파견·용역업체의 해고에 시달리지 않기를 희망한다. 국립대병원과 파견·용역업체의 1인당 파견·용역 계약비와 실제 파견·용역노동자의 인건비 격차가 월 100만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파견·용역업체의 중간착취 때문에 파견·용역 노동자가 피눈물 흘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행히 최근 교육부가 파견·용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조속히 추진할 것을 촉구하는 공문을 국립대병원에 보냈다. 노동부는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 추진 상황을 파악하고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고용노동청별로 국립대병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대병원 사용자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제외하고는 국립대병원 파견·용역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걸림돌은 없다. 노동의 가치와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환자와 국민이 안전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파견·용역 노동자에 대한 희망고문을 지속하지 않기 위해 사용자와 정부가 결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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