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어도 벌금 몇백 만원만 내면 끝인데 삼성이 왜 돈과 노력을 들여서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겠습니까?”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최근 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산업재해와 재난참사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한다. 전문가들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정당)에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를 들었다.


 

▲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솜방망이 처벌로는 안전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지난 1일은 노동절이었다. 하지만 1천500만명 노동자가 꿈꾸는 노동존중 사회는 말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거듭났지만, 2017년 산업재해 사망자가 2천명에 달하는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 1위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20대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으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국회에서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기업 등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다소 미진하다. 우리나라가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영국이나 캐나다·호주 등 선진국처럼 기업의 안전관리책임강화법을 제정해 기업과 사업주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 당시 노동자 40명이 사망했지만 해당업체 대표는 집행유예 1년에 벌금 2천만원을 내는 데 그쳤다. 2011년에는 이마트 탄현점에서 노동자 4명이 질식사로 숨졌지만 법인과 지점장은 벌금 100만원을 내고 풀려났다.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로는 안전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저와 민주평화당은 2019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함께 기업의 안전관리책임강화법을 제정하고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강제적인 작업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작업거부권을 신설해 노동자가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 노동자들이 직접 당을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대리인을 국회에 보낼 수 있도록 민주평화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반드시 이뤄 내겠다.

 

▲ 여영국 정의당 의원

정부·여야가 약속한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실현해야
여영국 정의당 의원

이번 노동절은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가 발생한 지 정확이 2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사고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여야의 모든 대선후보들이 사고현장을 찾아 사고 재발방지와 원인 제공자 처벌을 약속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회에서 여전히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재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7년까지 154만명 이상이 산재사고를 당했으며, 산재사망자는 4만명이 넘어간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사고사망만인율은 OECD 국가 중 1위이고, 일본과 독일의 4배, 영국의 14배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와 같은 중대재해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기업의 안전관리의무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반한 때에는 경영자와 기업, 여기에 의식적으로 직무를 유기한 관련 공무원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입법이 필수적이다.

“노동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노동절을 맞아 공개한 메시지의 핵심 문구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노동으로 꿈을 이루고, 노동으로 세계를 발전시키고, 노동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산업현장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

2년 전 각 정당 대표들의 약속이 공(空)약이 되지 않도록, 노동절 대통령 메시지가 무의미한 선전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도록 정부와 여야가 빠르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힘을 합치기를 바란다.

 

▲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집행위원장)

한국에서 산재사망은 살인이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집행위원장)

한국의 산재사망은 운명(불운)도 아니고, 노동자 개인 책임도 아니며, 회사(공장)를 운영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부수적 피해’도 아니다. 매번 비슷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사고 형태는 매우 기초적인 안전 조치만 있었어도 예방 가능한 재래형 사고이며, 충분히 예방에 투자할 자원이 있는 대기업 사업장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의 산재사망은 ‘살인’이다. 살인한 자를 살인죄로 처벌하기 위해, ‘인과응보’가 작동하는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물론 이 법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기업의 반대는 상수다. 더불어 기업이라는 조직, 개인의 집합이면서 그 이상인 ‘자연인’이 아닌 ‘기업’의 범죄를 어떻게 입증하고 처벌할 것인가라는 어려운 과제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점점 더 중요한 사회적 주체로 부각되고 있는 기업의 망나니짓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서는 관련 논의가 시급하다. 산재사망 노동자 유가족, 세월호 피해 유가족, 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가족 등 기업과 국가에 의해 자행된 ‘구조적 살인’으로 가족을 잃은 많은 이들의 한 맺힌 절규에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자연인은 아니지만 노동자·시민을 죽이고 있는 기업의 살인 행위를 어떻게 입증하고 처벌할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법률가와 학자들의 토론을 바란다. 국회에서도 하루빨리 관련 법안에 대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

산재 유족만의 문제 아닌 전 국민의 문제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실행이 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중대재해를 낸 기업 사업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공감대가 중요하고 큰 의지를 가지고 싸워야 법 제정에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산재사망 노동자의 유족들이 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아픔을 겪은 유족들은 자식이나 가족의 죽음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지켜봤다. 사고와 재해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얼마 안 되는 벌금을 물려 봤자 기업에는 큰돈이 아니다. 사업주가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다. 안전을 위한 설비투자 등을 무시하기 쉬워진다.

사용자 처벌 강화 주장이 오래됐는데도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서조차 처벌규정은 매우 미약하다. 고 김용균씨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수십년 만에 전부개정된 법인데도 말이다. 정부가 산재를 줄이겠다고 공언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대책은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정부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국회도 의지를 가져야 한다. 산재사망 노동자 유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문제다.

 

▲ 정민정 마트산업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

생명·안전 담당부서는 원청이 직접 담당해야 한다
정민정 마트산업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

마트노동자도 중대재해 위험 속에서 일한다. 대형마트는 수백명의 노동자가 상시근무를 하고 있고, 매일 수천명의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마트를 운영하는 회사는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 대부분 시설관리와 보수업무를 외주화했다.

그래서다. 마트에서 일하다 죽는 노동자 다수는 하청노동자다. 아직도 우리 기억에 각인된 2011년 7월 발생한 이마트 탄현점(현재 폐점) 하청노동자 질식사고다. 등록금을 벌려던 대학생을 포함해 터보 냉동고를 점검하던 노동자 4명이 질식사했다. 회사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발주업체 이마트와 해당 이마트 지점은 각각 100만원의 벌금형을 받는 것에 그쳤다.

지난해 3월28일 경기도 남양주 이마트 다산점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던 하청노동자 이아무개(21)씨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사고 후 이마트는 자신들은 사고와 무관하다고 발뺌했다. 오히려 사고로 이마트가 손해를 보고 있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이 같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원청이 역할을 해야 한다. 2011년 이마트 사고 이후 정용진 부회장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안전한 마트 현장이 됐을지 모른다.

논의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장·다중이용시설에서 안전관리조치 소홀로 인사사고가 났을 때 기업 대표에게 책임을 물도록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안전문제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것이지만 사실 이것으로도 부족하다.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는 부서는 직접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적어도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과 재벌기업은 충분히 시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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