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요즘 집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망울, 기다란 꼬리를 달고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도도함, 주인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도 불쑥 다가와 애교를 발산하는 고양이의 매력은 반려동물로 삼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각 대학교에선 길고양이들에게 밥과 간식을 주며 놀아 주는 동아리가 생겨날 정도이며, 유튜브로 고양이의 일상이 찍힌 영상을 바라보며 그저 흐뭇해하는 청년들이 상당히 많다. 이처럼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란 존재는 많은 사람들 삶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그저 돈만 버는 기계인 듯 아침 출근을 지루하게 반복하고, 업무와 상사로부터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몸과 마음을 다치고 있는 직장인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피로사회다. 그래서 퇴근 후엔 사람이 붐비는 곳은 최대한 피하고 싶기 마련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나를 반겨 주는 고양이는 더욱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잔소리도 하지 않으며 무리한 걸 요구하지도 않는다. 편견과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 주는 고양이가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직장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 모두 고양이를 키우자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삶의 행복이 충족되기 위해선 일터 내 관계와 업무만족도만큼 일터 밖에서의 삶을 보장받는 것 또한 우리가 충분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퇴근 후 고양이와 마음을 교감할 때 위로를 받는 것처럼 다른 집단 사람들과의 관계일 수도, 책이나 영화일 수도 있다. 혹은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보내는 사색의 시간이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운동일 수도 있다.

일터 밖 삶의 권리란 것이 꼭 여유나 취미생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파트너와 가사노동 및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분담하고, 자녀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는 것 역시 개개인이 지닌 책무이자, 동시에 보장받아야만 할 사회적 권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겐 노동시간단축이 절실하다.

고양이를 비롯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은 무수히 많은데, 한국의 노동시간은 너무나 길다. 이러니 온몸이 아프다. 컴퓨터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직장인들 같은 경우 허리와 목, 어깨 통증을 고질적으로 겪는 건 물론이다. 기업이 노동자 개인에게 업무 보람을 느끼게끔 섬세하게 신경을 써 주는 것도 아니면서, 대책 없이 업무 폭탄만 떨어뜨리고 있으니 고통의 연속이다.

야근이 반복되는 직장에선 통상 모든 구성원들이 예민해 있기 마련이니, 노동자들 간의 관계에서도 트러블이 잦을 수밖에 없다. 업무 강도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사람 문제까지 더해지면 정말 답이 없다.

오래전부터 이어진 한국의 장시간 노동 관행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사회적 숙제다. 노동자 입장에선 박탈당하는 권리 문제지만, 기업 입장에서도 업무효율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해 비용 측면에서 낭비를 하는 문제다. 그런데도 장시간 노동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사회적 노력은 미진하다. 이러니 최대 노동시간 주 52시간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통과 이후 기업들은 난리를 피우며 탄력근로제가 확대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선동을 하고 있으며, 정치권은 여기에 낚여 버린 것이다.

노동시간단축이 단순히 기업만 손해를 보는 것이란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자에겐 워라밸을, 기업에겐 업무효율 향상을 도모해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그래야만 장시간 노동에 굳어진 시스템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최소휴식시간제도 같은 진전된 정책까지 도출될 수 있다.

지난 1일 129주년 세계노동절을 기념하며 청년유니온 조합원들과 함께 집회와 행진에 참여했다. 피켓을 들고 행진하며 “냥이(고양이)가 기다리고 있다, 퇴근 좀!”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이 외쳤던 하루 8시간 노동의 권리가 한국에선 여전히 논란의 대상인 이상한 현실. 빨리 퇴근해 고양이와 놀아 줘야 한다는 청년노동자들의 유쾌한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할 이유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heol37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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