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문재인 정부 2년은 ‘정부에 기대서는 노동자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기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세우며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해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하겠다고도 했다. 산업재해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이 노동정책들은 그동안 치열하게 싸운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것이다. 비정규직이 넘쳐 나는 시대, 노동자들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였다.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노동정책의 결과는 매우 나쁘다. 최저임금은 첫해에 16.4%를 올렸지만, 보수언론과 기업의 반발에 밀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고 결국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사라졌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포기도 선언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을 시행하기는 했으나, 정규직 전환 제외자가 절반 이상이고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고용으로 전환했으며 노동조건도 개선되지 않았다. ILO 핵심협약은 선 비준 하지 않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넘겨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 기업들이 원하는 노동법 개악마저 시도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해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것 같았지만 시행령을 개악해서 노동자들을 다시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강조했고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취약한 노동자들을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결과를 보면 비정규 노동자, 작은 사업장 노동자, 노조가 없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졌다. 작은 사업장에는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적용되지도 않았는데, 휴일근로 중복할증만 사라졌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시도하면 ‘근로자대표와의 합의’를 통해 11시간 연속휴게나 임금보전을 안 해도 되도록 만든 바람에 노조 없는 노동자들은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약간의 수당과 상여금을 받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미루면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이 정부는 본질적으로 ‘성장’과 ‘이윤’ 논리를 자신의 가치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마치 노동자와 재벌대기업이라는 두 이해관계자의 조정자인 것처럼 행세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에게 약속을 남발하고도 기업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비틀어 시행하고, 자유한국당 핑계를 댄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고 김용균씨 어머니의 노력으로 통과됐다. 하지만 정부는 도급승인 범위도 좁히고 작업중지권 해제도 쉽게 하고 대상범위도 좁히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시행령조차 이렇게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 자유한국당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재벌 총수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국정농단의 한 축을 맡았던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과 만나서 규제완화 등을 논의하면서, 정작 노동자들에게는 양보와 타협만을 요구한다. 정규직 노조는 양보를 받아 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해 경사노위라는 논의 틀에 넣으려고 한다.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흥정 대상으로 삼고 노동자들이 그것을 거부하면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난한다. 경사노위 안에서 주고받기를 하면 오히려 가장 약한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는다. 그런데 이 정부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는 달라지지 않았으나 노동자들은 달라졌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라이더·퀵서비스·대리기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조직됐고 문화·예술노동자와 방송노동자, 요양보호사 등 사회서비스 노동자들도 노조를 만들었다. 하청으로만 이뤄진 공장의 노동자들도 조직됐다.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들은 개별 사업장 문제를 넘어 공동투쟁을 하기 시작했다. 5월11일에 모이고 7월 파업을 함께 준비한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는 정부에 기대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쟁취해야 함을 분명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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