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4월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달이다. 304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달이고,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기도 하다. 1993년 태국에서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가족> 캐릭터 인형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18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나 많은 노동자가 사망한 이유는 노동자가 인형을 훔쳐 가는 것을 방지한다며 공장 문을 밖에서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노동자의 목숨이 가장 싼 비용에 속했던 것이다. 태국만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는 1천777명으로 노동자 10만명당 9.6명꼴이며 유럽연합(EU) 평균의 4.4배다. 이처럼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개선을 위한 변화를 체감하긴 어렵다.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부개정됐다.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한 큰 변화였다. 때문에 세부 내용을 규정하는 하위법령 개정안이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법으로 보완돼 나오길 바랐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하위법령 개정안 내용은 참담했다. 특히 작업중지 관련 부분은 우려가 크다.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 영상메시지를 보내 “산업재해는 사회적 재난”임을 언급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안전이 확보됐는지 반드시 현장 근로자의 의견을 듣고 확인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강력한 메시지는 곧바로 노동부 지침으로 현실화했다. 그해 9월 노동부는 전면 작업중지 원칙을 골자로 한 ‘중대재해 등 발생시 작업중지 명령·해제 운영기준’을 마련했다.

사망사고 같은 중대재해는 해당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만들어 낸 결과다. 따라서 사고가 발생한 일부 설비만 가동중지를 하거나 부분 작업중지를 할 것이 아니라, 해당 사업장 전체 작업을 중지해 사업장 전반의 안전관리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부의 전면 작업중지 원칙에 노동계는 환영했지만, 경영계는 기업활동 위축 등을 거론하며 일제히 반발했다. 그런 경영계의 우려와 입김 때문이었을까.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노동부가 회사 눈치를 보며 전면 작업중지 원칙을 지키지 않아 비판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적으로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망에도 불구하고 작업중지는 해당 작업과 동일한 작업으로만 한정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산재 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대통령 메시지와 함께 등장했던 노동부의 ‘중대재해 발생시 전면 작업중지’ 원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작업중지 발동 범위도 ‘해당 작업’과 ‘동일한 작업’으로 축소됐다.

게다가 노조 추천 전문가의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 참여를 보장하라는 노동계 요구를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당해 사업장과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전문가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일터의 위험요소와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직접 체감하는 사업장 노동자 조직이 추천한 전문가가 참여해야 현장을 전방위로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끝내 노동자 참여는 삭제됐다.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안은 법 취지와 노동부 방침 자체를 훼손하면서 사업주 해제신청에 따라 ‘4일 이내’ 작업중지해제심의위를 개최하도록 하는 내용만 달랑 남았다. 사업장 규모와 작업 특성에 따라 취해야 할 안전·보건조치 등 대책이 마련됐는지 충실히 검토하기에는 4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이미 계속 제기됐다. 그럼에도 노동자 참여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현장에서 제기된 개선 요구사항은 이번 하위법령에 반영되지 않았다.

태안 화력발전소 사례를 통해 작업중지 방침이 얼마나 지켜지지 않는지 확인됐다. 이제 변화가 필요한 때다. 작업중지권이 산업안전보건법에 존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노동자 스스로가 위험을 감지하고 위험에 처했을 때 주저 없이 자기 생명을 가장 우선순위에 둘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산재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취지를 온전히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