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에서 파견·용역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5천명에 육박한다. 환자이송이나 청소·시설관리 같은 업무를 한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단계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이다. 3단계로 나뉜 정규직 전환 단계 중 가장 먼저 추진한다는 뜻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립대병원을 통틀어 간접고용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곳은 양산부산대병원이 유일하다. 전환된 노동자는 240여명이다. 사실상 전환율 0%라고 지적하는 노동자들 주장에 힘이 실린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 목소리를 들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현지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직국장

국립대병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율은 사실상 0%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지 2년이 되도록 5천여명의 국립대병원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2017년 당시 맺었던 용역업체 계약이 두세 번이나 연장되고 3개월·6개월짜리 인생을 사는, 오히려 비정규직 제로선언 이전보다 더 불안한 인생을 살고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보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도대체 무엇일까?

현재 국립대병원 간접고용 노동자 정규직화의 가장 큰 쟁점은 ‘자회사’다.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생명·안전업무는 직접고용이 원칙이라고 명확하게 나와 있다. 병원 비정규 노동자들이 하는 업무는 모두 생명·안전업무에 속한다. 의료진이 아니라 하더라도 환자들이 사용하는 병실·수술실 등을 소독하고 청소하는 일, 온도를 관리하고 전기를 관리하는 일, 환자를 이송하는 일, 환자식을 조리하고 배식하는 일 등 환자들과 연관되지 않은 일이 없다. ‘병원’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회사’라는 카드는 왜 거론되고 있는 걸까? 지난해 말까지만 하더라도 몇몇 국립대병원은 ‘직접고용’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병원들은 지금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왜일까? 그 배경에는 바로 서울대병원이 있다.

서울대병원 노사는 지난해 원·하청 노동자들의 공동파업 이후 ‘자회사를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합의했지만 여전히 자회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다른 국립대병원들은 대놓고 ‘서울대병원이 자회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큰형님 모시듯 서울대병원을 떠받들고 서울대병원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대병원은 왜 이렇게 자회사를 고집하는 것일까? 서울대병원은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전문가협의체에서 자회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를 보면 ‘역시 직접고용이 답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대병원 주장을 몇 가지만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직접고용하면 파업인력이 늘어나서 안 된다. 간접고용은 현재 100%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하나 직접고용을 하면 그러지 못한다”는 것.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할 수 없다는 것이 자회사 추진 이유라니, 노동자들을 앞으로도 계속 탄압하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둘째 “정부가 달라지면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달라질 수 있고, 지금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면 그때 다시 외주화하기 어려우니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대병원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치상 직접고용하면 다른 국립대병원에도 파장이 크기 때문에 안 된다”는 이유다. 다른 병원들의 직접고용까지 막고 있는 셈이다.

서울대병원의 얘기를 해석하면 이렇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다시 비정규직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회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서울대병원뿐 아니라 다른 국립대병원들에도 자회사를 전파해야 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내걸고 싸우고 있는 이유, 이보다 더 명확한 이유가 있을까? 서울대병원이 오히려 직접고용 필요성을 절실하게 알려 주고 있다.

병원들은 외환위기 이후 핵심업무와 비핵심업무로 나눠 가능한 한 많은 업무를 외주화했고 위험을 외주화시키며 이윤을 뽑아냈다. 유기적으로 연결돼 운영해야 했던 병원 업무는 그렇게 분절됐고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할 병원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대표적이다. 병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이런 지난날을 반성하고 환자들이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안전한 병원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국립대병원 간접고용 노동자 정규직화, 자회사가 아닌 직접고용으로 하루빨리 진행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