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패스트트랙을 둘러싸고 난리다.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등을 신속처리절차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그걸 저지하겠다고 국회가 난장판이다. 입법 등 그동안 국회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비난받았던 대한민국의 ‘식물국회’가 이젠 몸싸움이 난무하는 ‘동물국회’가 돼 버렸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추진을 밀어붙이는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4당의 의원들이든, 그걸 저지하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든 국회의원들이 오늘처럼 국회에서 입법권 ‘행사’라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부러울 뿐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싸고는 어떠한 난장판도 없었다. 패스트트랙은 고사하고 일반처리 안건으로도 추진되지 못했다.

2. 정부는 노사정 합의를 통해 국회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을 개정하고서 비준을 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 나라에서 ILO 핵심협약(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단체교섭권 보호에 관한 87호 및 98호, 강제노동에 관한 29호 및 105호 협약) 비준은 어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오늘은 다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정 간의 합의라는 사회적 대화를 거쳐 그 안을 제출하면 국회는 그에 따라 핵심협약에 부합하는 입법을 한 후에 대통령이 하는 것으로 추진됐다. 이러한 비준 추진은 ‘촛불혁명’을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새롭게 하는 방식이 아니다. 1991년 ILO에 가입할 때부터 제기된 핵심협약 비준 문제는 그동안 그 정권이 무엇이든 이러한 방식으로 추진했던 것이고, 오늘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니 그 비준을 공약했던 문재인 정부라고 해서 뭘 더 특별히 추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서 노사정이 합의한 비준 추진 제도개선안을 도출해 내고 이를 국회에 넘겨 처리하는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노사정 합의를 통해 국회에서 입법을 거쳐 비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달리 내세울 말이 없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7일 기자들을 상대로 한 'ILO 핵심협약 비준 절차' 설명회에서 "지금까지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선 입법 후 비준' 방식을 고수했는데, 이날 설명회에서는 헌법에 근거해 국회가 먼저 동의한 뒤 대통령이 비준하는 방안도 설명했다"고 전해진다(매일노동뉴스, 2019년 4월18일자).

그런데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18일 국내 언론사 고용노동담당 부장 초청 정책간담회에서 국회 비준 동의 없이 대통령 재가로 ILO 협약을 비준하면 헌법 위반 문제가 발생해 일부에서 제기되는 ‘선 비준 절차 추진’은 적절치 않고 ‘선 입법 후 비준’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보도됐다. 12일 종료된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논의를 이어 나가기 위해 경사노위는 19일 부대표급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추가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오늘도 이 나라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하고 있을 뿐이다.

3. 대한민국헌법은 대통령에게 “조약을 체결·비준”할 권한을 부여했다(73조).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된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헌법에서 국회가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했다(60조1항). 바로 이 규정을 내세워 국회 입법 후에 비준을 추진해 왔던 것이고, 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비준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동의권이니 사후 추인을 받겠다며 추진했다가는 헌법 위반으로 탄핵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니 조심하긴 해야 할 규정임이 분명하다. 국회 동의 없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해서는 안 될 사안인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국회 동의를 받아서 비준하겠다고 추진해 왔던 것인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하고서 대통령에 당선돼 취임한 지 2년이 되도록 단 한 차례도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한 사실이 없다. 그저 경사노위에서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회 입법을 거쳐 비준하겠다고 할 뿐이었다. 수도 없이 내가 말했던 것처럼 경사노위에서 노사정 간에 노조할 자유 등 노동기본권 보장을 협상할 일이 아니다. 노동자 자유는 협상 대상일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활동하는 자유는, 일반 국민에게 보장되는 결사의 자유처럼 노동자에게 보장돼야 할 자유인 것이다. 결코 사용자와 협상해서 보장될 자유가 아니다. 그런데도 끝도 없이 이 나라에서는 노사정 합의로 노동자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사회적 대화를 말하고 있다. 노사 협상을 통해서라면, 노동자의 자유는 사용자측이 합의해 주지 않으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된다. 경사노위에서의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조법 등 노동기본권에 관한 논의가 그랬다. 더구나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뭔가를 내줘야 사용자는 합의해 줄 수 있다고 버틸 것이고, 실제로 오늘 경사노위에서 사용자측은 쟁의행위시 대체근로 전면 허용, 직장점거 금지 등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은 진창에 빠져 버렸다. 사용자측이 합의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추진하는 것이 돼 버렸다. 엉망진창 비준 추진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으로서 비준을 위한 일은 하지 않고서 경사노위에서의 합의 없음만 탓하고 있다. 물론 변명할 말은 있을 것이다. 경사노위에서 노사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안을 마련해 제출하면 국회에서 수월하게 입법하게 될 것이니 원활하게 비준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노조법 개정 등 입법안을 제출해 봐야 사용자편을 드는 자유한국당 등이 반대할 것이니 국회 입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일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가 합의해 주지 않을 자유를 위해 우리 노동자들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라"고 외치고 있다. 사용자가 합의해 주지 않을 자유야말로 이 나라에서 노동자에게 보장해야 할 자유인 것이고, 사용자가 합의해 주는 자유는 노동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노조할 자유는 노조를 조직해서 교섭하고 파업 등 행동할 자유인데, 사용자를 상대로 해서 투쟁할 자유인 것이라서 뭔가 다른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 거래 없이 자발적으로 합의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러니 사용자와의 합의를 통한 비준의 추진이야말로 가능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걸 추진하는 것은 결국 ILO에 가입하고서 28년간 해 왔던 실패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자유는 사용자의 승낙이 아니라 사용자의 반대를 무릅쓰고서 보장될 수 있다. 노사정 합의, 사회적 대화 없이 비준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헌법은 경사노위에서의 합의를 노동 관련 조약 비준의 절차로 규정하지 않고, 대통령이 조약 비준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대로 비준을 추진하면 될 일이고, 그걸 하다가 실패했다고 해서 겁먹을 것도 아니다. 한 번 했다고 되지 않으면 다시 시도하면 될 일이며, 이 나라 노동자들은 그 실패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4. 이렇게 비준 문제를 심각하게 쓰고 있자니, ILO 핵심협약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대단히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낮은 수준에서의 자유를 노동자에게 보장하는 것일 뿐이다. 노동자가 단결해서 활동하고, 강제노동 당하지 않은 것을 자유로 보장하는 것이다. 왕·귀족 등 봉건의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이 세상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시민에게 보장하고서 왔다. 그때까지 자유는 시민의 것이 아니었고, 그 자유 보장으로 시민은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천부의 자유든, 국민으로서 자유든 이 세상에서 자유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였고, 그것을 보장받고서 이 세상은 자유의 세상일 수 있었다. 이렇게 시민은 국민으로서 국가로부터 자유를 보장받았던 것인데,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을 하지 않을 자유도 당연히 국민의 자유로 보장받았다.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단결해서 활동하고, 강제노동을 하지 않을 자유는 대한민국헌법에서도 국민의 자유로 규정했다. 그러니 노동자도 단결해서 활동하고 강제노동을 하지 않을 자유도 보장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단결금지법 등으로 이상하게도 노동자에겐 자유가 아니라고 우기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고, 19세기에 시민과 노동자의 운동으로 그 법리를 폐지하면서 노동자에게도 자유라고 선언될 수 있었으며, 이때부터 노동법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대단한 자유를 요구해서 "비준하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용자에게, 국민에게 보장한 결사의 자유 등을 노동자의 자유로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대한민국헌법은 노동자는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33조). 이를 두고서 국가가 구체적 법률로 특별히 그 행사를 보장해 줘야 하는 기본권이라고 왜곡해 왔으나, 노동자가 단결해서 활동할 자유는 특별히 국가권력이 뭔가를 해 줄 필요 없이, 그야말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서 국가권력이 금지하고 제한하지 않기만 하면 보장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노동자의 자유를 노조법을 통해 행사를 보장하는 양 왜곡해서 권력은 헌법의 노동기본권을 집행해 왔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이렇게 대한민국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자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17년 5월10일 헌법이 규정한 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는 내용의 취임선서를 했다(69조). 패스트트랙은 바라지 않는다. 경사노위의 사회적 합의, 국회 입법을 앞세우지 않고, 헌법의 노동기본권, 노동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비준을 추진하는 대통령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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