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와 한국지엠 연구개발(R&D) 신설법인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가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적용할 단체협약 체결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회사가 법인분리 전 단협에서 대폭 후퇴한 요구안을 제시하면서다.

생산현장도 들끓고 있다. 회사가 GMTCK 단협을 관철하면 존속법인인 한국지엠에도 개악안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부는 GMTCK 소속 조합원 대상 쟁의행위 찬반투표로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지부가 쟁의권을 확보한 후 열린 지난 24일 10차 교섭에서 회사는 기존에 제시했던 73개(수정 53개·삭제 17개·신설 3개) 요구안 중 18개(수정 14개·삭제 3개·신설 1개)를 철회했다. 그런데 노동조건 후퇴와 노조활동 제약이 우려되는 핵심 요구안은 그대로다. <매일노동뉴스>가 28일 한국지엠 단협과 회사의 2차 요구안을 들여다봤다.

쉬워지는 징계·해고·면직, 고용불안 심화할 듯

회사는 생산현장 중심 단협을 사무직 신설법인에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무직 업무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조항을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던진 요구안을 보면 생산직과 사무직 간 업무상 차이를 반영했다고 보기 힘들다.

회사 요구안을 한 줄로 요약하면 "징계·해고는 쉽게, 노조 권한은 작게"다. 회사가 수정·삭제를 요구한 '징계 관련 조항'은 징계·해고를 쉽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회사는 요구안 53조(징계사유)에서 징계할 수 있는 사유를 대폭 확대했다. 기존 단협은 12가지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징계를 할 수 없다.

회사는 요구안에 징계사유로 근무태만·지각·조퇴를 넣으면서 구체적인 규정은 적시하지 않았다. 징계사유로 추가된 "회사의 명예 또는 대외적 신용 손상"과 "취업규칙 등 회사의 각종 규정 위반"도 추상적이긴 마찬가지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징계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면직도 쉬워진다. 회사는 58조(면직) 사유에 "취업규칙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자"와 "그 밖의 근로계약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사유에 해당하는 자"를 추가했다. 회사가 취업규칙에 면직 사유를 임의대로 추가하거나 갈등관계에 있는 조합원들을 콕 집어 "근로계약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면직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고용을 위협하는 내용은 또 있다. 회사는 요구안에서 31조(배치전환의 제한)를 삭제했다. 기존 단협에는 배치전환과 공장이동·근무지 이동시 고용안정특별위원회에서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도록 돼 있다. 이 조항이 없어지면 회사가 인사권·경영권을 이유로 배치전환을 남발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배치전환을 정리해고 수단으로 악용하는 실정이다.

회사는 노사가 함께 고용과 경영현안을 두루 공유·논의를 할 수 있는 협의체인 고용안정특별위원회와 미래발전위원회 조항도 들어냈다.

투명경영은 남의 일? 노조 감시·견제 '차단' 의도

회사 경영활동에 대한 노조의 건전한 감시와 견제 활동을 차단하려는 속내도 엿보인다. 회사는 24조(문서열람 및 자료제공) 조항의 경우 "반드시 협조"에서 "협조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문구를 수정했다. 29조(투명경영 및 신뢰경영)에서는 사업·투자계획 공유와 각종 자료제공 조항을 삭제했다. 회사 경영계획 전반과 실적에 관한 사항을 노조와 공유하는 것은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규정된 내용이다.

한국지엠지부 관계자는 "지금도 충분히 폐쇄적이며, 불투명한 경영을 하고 있는 회사가 그나마 있던 정보제공과 공유마저 거부하겠다는 것"이라며 "불투명 경영을 넘어 신뢰할 수 없는 경영을 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지부는 "회사가 기존 73개 조항에서 18개 조항을 철회했지만, 조합원 노동조건과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다수 조항이 남아 있다"며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갈 게 아니라면 개악안을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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