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이 참가자들의 인사상 불이익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사무금융노조 KB손해보험지부(지부장 김대성)가 파업을 위해 준비했던 자체행사를 무산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회사는 쟁의대책위원회 구성 여부를 논의하는 분회장대회를 앞두고 행사 참여자를 징계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지부에 보냈다. 부서장들에게는 분회장들의 대회 참여 여부를 파악하고, 불참을 유도하기 위해 면담을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행사 일정 공지하자 부서장에게 명단파악·면담 지시=28일 지부에 따르면 지부가 이달 11일부터 13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려던 분회장대회가 취소됐다. 지부는 대회에서 쟁의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파업계획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지부는 지난달 열린 분회장대회에서 전체 분회장 155명 중 130명이 참여해 124명 찬성(95.4%)으로 조합원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하기로 결정했다. 지부는 이달 2일 조합원 88.09%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했다.

지부는 2월 말 2018년 임금·단체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노사는 지난해 6월부터 교섭을 하고 있다. 지부는 총액기준 임금 5% 인상을 요구했다. 회사는 기본급 1%로 맞서고 있다. 당기순이익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것도 주요 요구다.

지부는 1천500억원(100%)을 기준으로 당기순이익이 500억원 늘 때마다 지급률을 100%씩 가산하는 방식을 요구했다. 회사는 성과급 100%를 제안했다. 희망퇴직을 지부가 받아들이는 것이 전제였다. 지난해 KB손해보험은 2천62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3일 분회장대회 소집공고를 냈다. 그러자 회사는 이튿날 지부에 공문을 보냈다. KB손해보험은 "분회장대회를 정당한 노조활동으로 볼 수 없으며, 대회를 진행할 경우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참가 직원 결근처리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 △취업규칙에 따른 징계 △노조 및 간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를 예고했다.

회사는 분회장들이 소속된 부서장들에게 2건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분회장 면담 요령'과 '분회장대회 관련 현황 파악 등 요청의 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KB손해보험은 부서장들에게 △분회장 휴대전화 통화를 금지하고 사무실 전화 이용(녹취대비) △면담시 녹취 여부 확인 후 면담 △"참석하지 마라" 등 강압적 분위기 면담 금지를 지침으로 내려보냈다. 회사는 부서장들에게 "부서내 분회장대회 참석자 명단을 파악해 작성해 회신하고, 분회장과 면담을 실시하라"며 "행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회사가 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정표 편집 후 "패키지여행" 주장? 지부 분회장대회 취소=KB손해보험이 지부 내부문건을 입수해 수정한 뒤 행사 취지를 폄훼하는 데 썼다는 주장도 나왔다. KB손해보험은 최근 <KB HR 톡!톡!>이라는 내부소식지를 직원들에게 돌렸다. 해당 문서에는 분회장대회 일정표가 실려 있었다.

지부 관계자는 “기획사로부터 일정표 초안을 받고 대회 둘째 날 행사에 '소집단 토의'를 추가하고, '○○시장 방문'을 삭제하는 식으로 수정안을 마련했는데 회사가 첨삭표시가 된 문건을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며 "첨삭 표시를 지우고 일정표 초안을 게재하면서 분회장대회 취지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렸다"고 말했다. KB손해보험은 소식지에서 "이번 분회장대회는 근무시간에 이뤄지는 단체 패키지여행"이라고 주장했다.

지부는 분회장들이 겪을 불이익을 감안해 대회를 취소했다. 18일에는 쟁의행위 찬반투표 재투표를 했다. 회사는 이달 2일 조합원 투표에서 공고시간(오전 7시~오후 6시)과 실제 투표시간(오전 7시30분~오후 6시30분)에 차이가 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쟁의행위 찬성률은 88.09%에서 91.17%로 높아졌다. 지부는 조만간 대의원대회를 열어 파업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김대성 지부장은 "회사 방해로 분회장대회를 열지 못한 것은 1990년대 초반 이후 처음"이라며 "참가자 면담과 각종 불이익을 언급하며 노조활동을 막은 것은 엄연한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했다.

회사측은 "부서장들에게 분회장대회 관련 메일을 보낸 것은 맞지만 대회를 막으려 했다는 노조 주장과는 취지에 차이가 있다"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추후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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