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차장

지난 22일 장기요양과 관련된 중요한 두 가지 행사가 있었다. 한쪽에서는 노동·시민·사회가 장기요양 공공성 확대를 위한 재정확충 방안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국회토론회를 열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장기요양제도 전반을 심의하는 장기요양위원회를 개최했다. 비슷한 시간대, 두 공간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된 부분은 ‘제도개혁의 느려진 시계’였다.

국회토론회에서는 돌봄 제도화에는 성공했으나 사회화까지 나아가기에는 미흡한 현실을 진단했다. (개인)민간 중심 공급체계 때문에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공공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해결책이 제시됐다. 2016년 총선부터 지금까지 노동·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발제자들이 지적했듯이 현재까지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이용자와 그 가족들은 자신의 지역에 좋은 요양기관이 있는지 묻고 찾으려 노력하지만 장기요양 공공인프라는 시설수 기준 2%에 그치고 있다.

장기요양위원회도 마찬가지 내용을 논의했다. 가입자단체 위원들이 공공인프라 확충과 관련된 정부 계획은 있으나 실행속도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공공인프라 확충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전체 기관의 10% 정도는 국공립이 차지하도록 방향을 잡고 있다고 했다. 긍정적인 방향이다. 하지만 지난해 시작한 공공인프라 설치사업은 님비(지역 이기주의) 현상으로, 혹은 부지확보 어려움으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시·군·구의회의 인식이 낮다는 점도 한몫한다.

느려진 시계는 공공인프라 확충만이 아니다. 공공인프라를 국가가 직접 운영해 표준적인 서비스모델을 창출하자는 취지로 설계한 사회서비스원은 어떤가. 관련 법안은 일부 야당의 반대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검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사회서비스원 설립과 지원 근거를 담은 사회서비스 이용 및 이용권 관리에 관한 법률(사회서비스이용권법) 개정안이 의결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재정지원을 최소화하는 등 배짱을 부리고 있다. 심지어 24일 발표된 추가경정예산안에도 장기요양에 대한 내용은 전무하다. 정부와 국회, 누구 하나 힘써서 빨리 실행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번 정부는 스스로 내세운 계획이 많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설정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공공인프라 확충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원·커뮤니티케어같이 굵직한 기획뿐만 아니라 통합재가급여 도입, 장기요양 수가체계와 등급판정체계 개편, 거버넌스구조개편 등을 모두 넣었다. 계획만 보면 노동·시민·사회의 요구와 거의 흡사하다 할 정도로 개혁적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문제는 실행이다. 지금도 장기요양의 공공성 강화와 관련한 직·간접적 제도개선을 위한 ‘논의’만 되풀이하고 있다. 실행이 더디다 보니 실제 현장을 지키는 종사자와 이용자 모두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실정이다.

가정의 달인 5월을 앞두고 얼마 전 통계청에서는 인구 고령화 시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저출생 못지않게 중요한 고령사회에 대한 정책적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노인이 가족들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현대 사회에서 ‘돌봄의 위기’를 맞이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장기요양 공공성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충분한 노후소득과 의료서비스 못지않게 중요한 공적 돌봄이 보장되지 않는 노후는 행복할 수 없다.

‘장기요양 공공성 강화’의 시계가 점점 느려지는 현실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그 시계가 움직이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릴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린 지금, 과연 우리 노후의 돌봄은 충분하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지체된 제도개혁의 피해는 누구에게 향할까. 그리고 몰래 웃는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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