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꼭 읽어 주세요. 진짜라니깐. 혁명가가 됐든, 혁명하다 마는 기회주의자가 됐든 <버선발 이야기>는 꼭 읽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백발의 백기완(87)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목소리에선 쇳소리가 났지만, 그 어떤 젊은이보다 힘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에두르지 않았고, 시종일관 허를 찌르는 말로 사람들을 움찔하게 했다. 그런데도 객석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통일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지난 23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 대강당에서 <버선발 이야기> 출판기념 한마당을 열었다. 한마당 행사는 지난달 백기완 소장이 10년 만에 펴낸 신작 소설 <버선발 이야기>(오마이북)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다.

<버선발 이야기>는 백 소장이 평생 추구한 민중예술과 사상을 ‘버선발(맨발, 벗은 발)’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풀어낸 작품이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 버선발은 바다를 없애 거대한 땅을 만들고, 그 땅을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나눠 주는 내용이 담겼다. 백기완 소장은 이 책 초고를 지난해 봄 무렵 매듭지었지만, 건강 악화로 그해 4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퇴원 뒤 건강을 회복하면서 가을부터 다시 집필에 매달려 11월 탈고했다.

이날 행사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앉을 자리가 없어 일부 사람들은 통로 경사진 바닥에 앉거나 뒤편에 서서 행사에 참석했다.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도 다수 보였고, 행사 중간 객석에서는 “선생님 사랑합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남 옷도 차려 주는 게 잔치고 민중정서”

“자본주의는 ‘내 것’을 기초로 했어요. 자본주의 가지곤 안 된다는 것이 <버선발 이야기>입니다.”

이날 이야기마당 순서에서 검은 두루마기에 흰 한복 바지, 흰 목도리 차림의 백기완 소장이 지팡이를 바닥에 꽝 내려찍으며 호령했다. ‘노나메기’ 사상을 책에 녹여냈다는 것인데, 노나메기는 ‘너도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 사는 살 곳(세상)’이라는 의미다.

전노협 2대 의장을 지낸 양규현씨가 “책에서 어떤 대목이 가장 빼어나다고 생각하냐”고 질문 했을 때도 백 소장은 노나메기 사상으로 답했다.

“버선발이 어느 굿판에 떡 갔어. 굿판은 잔치하는 데야. 갔는데, 모르는 아주머니가 떡 하나 먹으라고 줘. (…) 김칫국도 줘. 돌아서 나오려고 했더니 웬 할아버지가 ‘이것 봐, 굿판에 오려면 옷을 좀 빨아 입고 오든지’ 하면서 옷을 하나 줘. ‘동생이 왔냐’며 동생 것도 하나 줘.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이게 바로 민중의 정서(새름)라는 거요. 잔치가 벌어지면 자기 옷들 차려입고 가잖아요. 남의 옷도 차려 주는 게 (민중의 정서고) 잔치예요.”

백 소장은 후배들의 질문을 괄괄하게 받아쳐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책에 보면 니나(민중)들이 돈 버러지 세상을 갈아엎고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러 가는 길에 그 앞에 뜬쇠(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갈아엎는 데 정말 예술의 몫이 큰 겁니까?”

사진가 노순택씨 질문에 백 소장은 “아니 예술가가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단 말이야” 하고 호통쳤다. 객석에 웃음이 퍼졌다.

“누가 하랬다고 해서 나서면 그건 혁명이 아니야. 욕심이지. 예술이란 게 내 거가 없거든. 그냥 예술은 하면 되는 거지. 그러니까 혁명가가 썩어 빠지면 예술가가 혁명가가 된다. 그런 뜻입니다.”

김미숙씨 “아픈 몸 이끌고 함께해 주셔서 고맙다”

이날 행사에는 백 소장과 함께 여러 사건을 겪어 온 사람들이 백 소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선생님이 맨 처음 빈소에 오셔서 그 어려운 몸을 이끌고 힘들게 용균이에게 절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마음이 많이 무겁고 아팠다”며 “선생님이 옆에 계시는 것만 해도 힘이 된다. 고맙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콜텍지회 조합원 김경봉씨는 “(투쟁을 하면서) 정말 힘들 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백 선생님밖에 없었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힘을 주기 위해 함께해 주신 어르신이었고,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고 인사를 전했다.

참석자들은 다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노랫말이 흘러나오자 백기완 소장도 통로 중앙으로 자리를 옮겨 팔뚝질을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는 그가 지은 시 <묏비나리> 일부를 차용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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