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오랫동안 근무한 회사로부터 갑자기 권고사직을 통보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서운함? 억울함? 배신감? 17년 이상 한 회사에서 계속 일한 노동자 A는 회사의 갑작스러운 권고사직 요구를 거부했다. 그리고 권고사직을 거부한 노동자 A에게 회사는 냉정했다.

회사는 △노동자 A에게 업무를 주지 않으면서 노골적으로 팀 업무에서 배제하기 시작했고 △노동자 A의 자리를 한쪽 구석으로 바꾸는가 하면 전혀 무관한 다른 팀으로 옮겨 버렸으며 △노동자 A와 팀내 동료 노동자들 간의 교류를 차단했고 △노동자 A의 사내업무 전산망 및 인트라넷 접속마저 끊어 버렸다. 회사의 강압적인 태도에 동료 노동자들은 선뜻 나서지 못한 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회사는 노동자 A를 회사에서 서서히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노동자 A가 17년 이상 열정적으로 근무했던 생계의 터전은 소리 없는 눈치싸움만 치열한 전쟁터로 변했다. 노동자 A는 아군 없이 고립된 채, 제대로 된 이유도 듣지 못하고 회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A는 종국적으로 자신을 ‘퇴직’시키기 위한 시나리오가 담긴 회사 문서까지 직접 확인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다. 회사는 무보직 대기발령을 거쳐 노동자 A를 서울 본사에서 지방으로 전직시키는 처분을 했다. 전직처분으로 노동자 A는 이전 업무와 전혀 다른, 전혀 해 본 적 없는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임금 삭감과 지방근무 등 심각한 생활상 불이익이 발생했다.

노동자 A는 자신을 표적한 회사의 집중적인 괴롭힘을 무엇으로 버텨 왔을까. 나는 힘들지만 단단하게 버텨 왔던 노동자 A와 함께 부당한 전직처분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노동자 A의 임금 삭감 등 생활상 불이익은 누적되고 있었다.

노동자 A의 구제신청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회사의 전직처분은 업무와의 연관성이 부족해 업무상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고 △전직처분으로 노동자 A가 겪은 생활 및 정신적인 불이익은 통상 감수해야 할 수준을 벗어난 것으로 판단되며 △전직처분을 하면서 노동자 A에게 부여될 업무 및 임금 등에 대해 신의칙상 요구되는 충분한 협의절차를 준수하지 않았으므로 전직처분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그동안 인사권을 내세워 무분별하게 권한을 남용했던 회사 행동이 부당한 것임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전직처분을 취소하고 정상적으로 근로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는 노동위원회 구제명령에 따라 노동자 A는 원직으로 복직해야 한다. 원직에 복직한 노동자 A를 회사가 어떻게 대우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과거 노동자 A를 표적한 회사의 괴롭힘이 또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다.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노동자 A와 같이 직장내 괴롭힘에 힘겨워하는 노동자가 호소하고 의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개정 근로기준법이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내 괴롭힘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2019년 7월16일 시행).

원직에 복직해 다시 시작할 노동자 A가 당당하고 단단하게 이겨 나가기를 대리인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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