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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정신 ① :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국제노동기구(ILO)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1944년)은 이렇게 천명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아마도 필라델피아 선언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므로, 노동의 담지자인 노동자도 상품이 아니다. 선언은 인간을 사물화했던 30년 전쟁이 초래한 치명적 결과를 반성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적인 가치로 세웠다. 다른 권리나 가치는 서로 간에 조정이 필요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그런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은 논증의 대상이 아니다. 아무리 과학적이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논증이라 할지라도. 만약 인간의 존엄성이 논증의 대상이라면 논증에 실패하는 순간 인간은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19세기 이후 모든 과학주의가 오류를 범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다. 선언에 의하면 인간의 존엄성은 오히려 과학적 논증이 토대로 삼아야 하는 도그마다. 의심 없는 믿음이다. 천명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근거로 삼지 않는 모든 이론과 주장은 기각돼야 한다.

필라델피아 선언이 이전의 인권선언들과 다른 점은 인간의 양가적 존엄성 원칙을 천명했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은 인종·신앙·성별과 상관없이 자유와 존엄과 경제적 안정 속에서 그리고 평등한 기회로써 자신의 물질적 진보와 정신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선언은 “물질적 진보”를 추구할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추상적 차원에서만 인권의 신성불가침을 규정했던 근대 초기의 형식적 인간관을 극복한다. 또한 선언은 “정신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인간을 사물화했던 산업주의적 인간관을 극복한다. <팡세>의 철학자 파스칼이 갈파했듯이 인간은 영혼만으로 살 수 있는 천사 같은 존재가 아니며, 물질만으로 살 수 있는 동물 같은 존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선언이 강조한 물질과 정신의 결합은 복지와 자유의 결합으로 변주된다. 인간이 자유롭게 사유하고 행위를 할 수 있으려면 빈곤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복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복지를 위해 자유를 희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복지 없는 자유는 공허하며, 자유 없는 복지는 위험하다. 테일러-포드주의는 노동자의 종속을 대가로 복지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의 탈상품화가 아니라 노동의 ‘명품화’에 불과할 것이다. 반대로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명분으로 복지를 해체했다. 그 자유는 노동자의 자유가 아니라 기업의 자유에 불과하다. 필라델피아 정신은 복지의 이름으로 자유를 희생하는 체제뿐만 아니라 자유의 이름으로 복지에 대한 요구를 우롱하는 체제도 거부한다.

선언이 말하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한정되지 않는다. 선언은 천명한다.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즉 선언이 말하는 자유는 집단적 자유로 확장된다. “결핍과의 투쟁은 각국에서 불굴의 의지로, 그리고 노동자 대표와 사용자 대표가 정부 대표와 동등한 지위에서 공동선의 증진을 위한 자유로운 토론과 민주적인 결정에 함께 참여하는 지속적이고도 협조적인 국제적 노력에 의해 수행돼야 한다.” 집단적 자유의 바탕에는 연대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

이 원칙들은 한국 사회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작지 않다. 아직도 우리는 이런 류의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노조를 못 만들게 할 수는 없지만, 근로자들이 원하는 복지수준을 충족시켜 준다면 근로자들이 노조에 가입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본다.”(포스코 관계자의 말) “임직원들에게 노조가 필요하지 않은 기업을 만들겠다는 경영철학은 변함이 없다.”(삼성에버랜드 관계자의 말)

노조를 자유로 바꿔 놓고 읽으면, 복지와 자유를 결합하고자 했던 필라델피아 정신과 두 기업이 추구하는 “경영철학”이 얼마나 대척점에 서 있는지 쉽게 이해될 것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복지를 어쨌든 잘살기만 하면 되는 결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는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은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참여한다는 것은 곧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박제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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