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초등학교 교과서가 근로기준법을 어기며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출판사에서 제작에 참여한 파견노동자가 휴일근로수당이나 주휴수당도 받지 못하고 일했다는 것이다.

21일 직장갑질119는 파견업체 M사 소속으로 교학사에서 일했던 박아무개씨 사례를 공개하며 “M사가 박씨에게 근기법에 명시된 주휴수당과 연장·휴일근로수당을 일부만 지급했다”고 밝혔다. 검인정 교과서는 교육부가 승인한 교과서다. 매년 전국 초·중·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가 교과서를 결정하면 시·도 교육청은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를 통해 출판사에 제작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출판사는 겨울방학과 여름방학 기간에 교과서를 제작해 교육청에 납품한다.

“주휴수당은 열심히 일해야 주는 것”이라는 사용자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대학생인 박씨는 겨울방학 아르바이트로 M사와 구두계약을 맺고 올해 1월16일부터 일했다. M사는 박씨를 서울 금천구에 있는 교학사 공장으로 보냈다. 교학사 공장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와 교육방송 교재를 만들었는데, 정규직과 계약직·파견직 노동자들이 뒤섞여 일했다. 박씨는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는 날이 많았다. 직장갑질119는 “박씨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있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씨가 확인한 임금명세서에는 휴일근로수당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주휴수당과 연장근로수당도 일부 지급되지 않았다. 기본급 93만8천원만 제대로 지급됐다. 직장갑질119는 “박씨가 올해 1월16일부터 2월1일까지 3주간 일하면서 받아야 하는 돈은 182만8천542원이지만 이 중 44만4천208원은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씨의 동료 김아무개씨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직장갑질119는 “김씨는 주휴수당을 받지 못했고 연장근로수당도 일부만 지급받았다”며 “32만6천150원이 체불된 상태”라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M사는 항의하는 박씨에게 '주휴수당은 열심히 일했을 때 수고했다고 주는 것이지 꼭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다니는 직원에게만 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씨와 김씨가 고용노동청에 체불임금 진정서와 입증자료를 제출하자 M사는 조사를 앞둔 지난 9일 체불임금을 입금했다.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나머지 M사 노동자들은 여전히 주휴·휴일수당 등을 받지 못하고 있다. 파견직과 달리 교학사에 직접고용된 계약직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시급이 최저임금보다 높고, 주휴·연장수당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직장갑질119는 “M사는 각종 수당만 미지급한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서 미체결, 최장 노동시간인 주 68시간 미준수 등으로도 근기법을 위반했다”며 “교학사만이 아니라 다른 검인정 교과서 제작 출판사도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파견노동자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파견직 쓰는 교과서 제작사, 정부가 점검해야”

교과서 인쇄사업은 제조업 생산공정이기 때문에 근로자 파견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5조2항에 따라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파견노동자를 쓸 수 있다.

직장갑질119는 교과서를 제작하는 출판사가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직장갑질119는 “출판사 교과서 제작은 새학기 개학 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시즌마다 반복적으로 업무가 진행되고 있고, (공익적 목적의) 교과서를 만든다는 의미가 크기도 하다”며 “출판사에서 직접고용하는 계약직 대신 사람을 쉽게 쓰다 버리는 파견직을 쓰는 것이 맞느냐”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검인정 교과서는 교육청에서 발주하는 만큼 교육청과 정부가 파견직을 쓰기보다는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도록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장갑질119는 22일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에 공문을 보내 교과서 제작인원 고용실태와 임금지급 실태를 파악하고,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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